▲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 AI 칩 'H20' 중국 수출을 차단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매출에 타격이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결국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인공지능(AI) 반도체 ‘H20’의 수출 규제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전자는 H20에 들어갔던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 매출 비중이 경쟁사보다 높아 이번 수출 통제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엔비디아는 현지시각 15일 미국 정부로부터 H20을 중국(홍콩과 마카오 포함)에 수출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이 규제가 무기한 적용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H20 중국 수출은 사실상 막히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H20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로 성능을 낮춰 제작한 중국용 AI 반도체다.
미국 동맹국에 판매되는 ‘H100’과 비교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코어 수가 41% 적고, 처리 성능은 28% 줄인 것이다.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가 H20을 통해 AI 모델을 학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측은 “55억 달러(약 7조6천억 원)의 일회성 비용을 2025년 1분기 재무제표에 반영할 것”이라며 “이 비용은 H20 관련 재고, 구매 약정, 관련 충당금에서 발생한 손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공시했다.
엔비디아의 2024년 중국 매출은 170억 달러(약 22조 원)로 전체 매출의 13%에 달했다.
H20 수출통제는 메모리반도체 기업 가운데 특히 삼성전자에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전체 HBM 매출에서 H20에 들어가는 HBM3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전체 HBM 매출의 약 20%가 중국 수출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중국에 직접, 일부는 엔비디아를 통해 공급해왔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테크기업의 AI 반도체 수요에 힘입어 시장 기대치인 5조1천억 원을 웃도는 6조6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HBM의 중국 수출 길이 막히게 된다면 하반기부터 실적 악화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지난해 12월 HBM의 중국 수출 금지를 골자로 하는 ‘중국의 군사용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제한을 위한 수출통제 강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의 H20용 HBM3 수요가 포함된 상반기 매출은 상당한 상승 잠재력이 존재한다”면서도 “다만 H20은 임시 방편에 가까우며 올해 3분기부터 H20 판매는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미국의 엔비디아 AI칩 'H20'의 중국 수출 차단이 앞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더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
SK하이닉스는 HBM3 매출 비중이 크지 않다.
게다가 이미 H20용 HBM 추가 판매를 3월에 마친 만큼, 재고 손실처리 등의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HBM3E 판매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이번 미국의 수출통제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엔비디아가 준비해왔던 차세대 중국용 AI 칩 ‘B20’과 ‘H20E’의 향후 중국 수출도 어려워진 만큼, SK하이닉스도 앞으로 중국 HBM 매출에서 악영향을 피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B20과 H20E에는 HBM3E가 탑재될 예정이다. 앞서 엔비디아는 최신 버전 H20에도 HBM3 대신 HBM3E를 적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글로벌투자분석실은 “엔비디아가 최근 H20 칩에도 HBM3E를 채택하기 위해 SK하이닉스에 공급을 요청했다”며 “계약이 성사된다면 SK하이닉스의 HBM 엔비디아 공급량은 90억 기가비트(Gb)에서 향후 100억Gb 내외에 도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H20의 중국 수출 제한으로 AI 반도체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한켠에선 이 같은 미국 규제 조치가 중국의 자체 그래픽처리장치(GPU), HBM 개발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을 비롯한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이 막히게 된다면, 중국 기업들은 자체 AI 칩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며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CXMT와 한국 메모리 기업의 기술격차가 줄어드는 등 이미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현실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