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된 반도체 보조금 법안을 원점으로 되돌려 재검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압박하는 동시에 한국 및 대만과 관세 협상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시됐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과 관세 정책을 ‘당근과 채찍’으로 활용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의 현지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투자 지원과 세제혜택을 약속받은 기업들이 대상에서 제외될 위기에 놓이며 각국 정부와 반도체 제조사들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반도체 전문지 EE타임스는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법을 재편하는 이유는 TSMC의 대규모 투자 확대 성과를 재현하려는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EE타임스는 트럼프 정부가 관세 정책을 채찍, 반도체 보조금을 당근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는 관측을 전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우수한 한국이나 대만 등 국가와 무역 협상에서 반도체 보조금을 무기로 삼아 관세 논의를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행정명령을 통해 상무부가 미국 내 설비 투자를 더 활발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신규 조직을 설립했다.
해당 조직은 상무부가 이미 진행하고 있던 반도체 지원금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돼 사실상 바이든 정부에서 수립된 계획을 재검토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과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제조사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임기에 시행된 법안에 따라 미국 정부에서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신설 조직이 상무부 대신 결정권을 쥐게 될 수 있어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아직 실제로 보조금 지급이 대부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이미 결정된 보조금 지급 대상과 액수를 모두 백지화해 원점으로 돌린 뒤 미국 내 투자 계획을 반영해 지원 규모를 다시 책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연히 반도체 기업은 물론 각국 정부도 미국의 정책 변화를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TSMC가 미국에 1천억 달러(약 147조 원)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놓은 점은 트럼프 정부의 새 전략에 더 힘을 실어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TSMC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에서 제조되는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언급하자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해 면제권을 획득하려 하고 있다.
자연히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전자나 인텔 등 반도체 보조금 대상에 포함됐던 다른 기업도 TSMC를 뒤따라 투자를 늘릴 가능성을 기대하게 될 수밖에 없다.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건설현장 사진. |
EE타임스는 트럼프 정부에서 삼성전자와 인텔에 제공하려던 지원금 지급을 중단하거나 완전히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기관의 관측도 전했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TSMC와 달리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잇따라 늦췄기 때문이다.
테크인사이츠는 “삼성전자와 인텔은 최근 재무 문제를 겪고 있는데 결국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취소될 위기에 놓이고 있다”고 바라봤다.
조사기관 무어인사이츠는 삼성전자가 가장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는 분석도 전했다. 인텔은 미국 기업인 만큼 트럼프 정부 정책에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어인사이츠는 “미국 기업에 보조금 액수가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외국 기업은 입장이 다르다”며 “트럼프 정부는 삼성전자와 TSMC를 상대로 더 유리한 거래를 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도 TSMC와 같이 미국 반도체 공장에 더 많은 자금을 들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지 않는다면 보조금이 철회되거나 대폭 줄어들 위기에 놓일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EE타임스는 “바이든 및 트럼프 정부는 모두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중요한 과제로 바라보고 있다”며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은 거래를 원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전했다.
만약 TSMC나 삼성전자가 트럼프 정부의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 압박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히 보조금 삭감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한국에 25%, 대만에 32%의 관세 부과 계획을 포함한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한 뒤 전 세계 국가와 무역 협상을 이어갈 계획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에 소속된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투자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결국 한국과 대만 반도체 제조사들이 트럼프 정부의 투자 확대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 차원의 관세 타격을 줄이는 데도 기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EE타임스는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재편은 채찍질을 더 약하게 느끼도록 하는 당근 역할을 할 것”이라며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