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를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전날 비즈니스포스트의 보도 이후 홈페이지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3일 현재 홈페이지에서는 김 회장이 지난해 3월 보낸 ‘2023년 연례서한’만 볼 수 있다.
김 회장은 매년 3월 국민연금과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글로벌 주요 100여개 기관투자자에게 연례서한을 보낸다.
MBK파트너스는 그동안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시장과 소통해왔는데 올해는 예외인 것이다.
김 회장은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를 이끄는 수장이다. 그의 투자 인사이트가 담긴 연례서한은 그 자체로 시장의 큰 관심을 받는다.
특히 이번 서한은 지난해 고려아연 인수 논란에 이어 올해 홈플러스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어떤 내용이 담길까 시장의 관심이 더욱 집중됐다.
하지만 홈플러스 노조와 금융투자업계는 물론 국회와 금융당국, 홈플러스를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의 우려와 관심이 무색할 정도로, 김 회장은 이번 서한에서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연례서한 전반에 걸쳐 MBK파트너스의 과거 20년 성과를 높이 평가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홈플러스 사태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언론에 약간의 잡음을 일으켰다(generated some noise in the press)”는 식으로 상황을 축소했다.
여론의 악화와 국회, 금융당국, 세무당국, 검찰의 전방위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연례서한만 보면 홈플러스 사태를 잘 컨트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 회장이 “지분가치 회수를 위해 기업회생절차 속에서도 홈플러스 운영 통제권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It is worth noting that under rehabilitation protection, MBK Partners will still be in control of operations, as we seek to salvage some meaningful value for our equity interest.)”고 말한 점은 국회에 거짓을 말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 회장은 3월18일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낸 불출석 사유서에 “이미 투자가 완료된 개별 포트폴리오 회사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런 태도는 그동안 MBK파트너스를 이끌어 온 김 회장의 경험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김 회장이 지난 20년 간 MBK파트너스를 이끌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회장은 자본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MBK파트너스를 국내 대표 사모펀드로 키웠다.
그 과정에서 홈플러스, 고려아연, bhc 등 다수 기업의 인수 혹은 운영과 관련해 여러 차례 국회의 부름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고, 이와 무관하게 MBK파트너스는 결과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 역시 결국에는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을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이전과 분명 달라 보인다.
한 기업의 인수와 경영 과정에서 불거진 시장교란, 고용승계, 갑을상생을 둘러싼 단순 논란이 아니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갑작스러운 기업회생 신청으로 국내 자본시장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MBK파트너스가 이번 사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에서 더 이상 사업을 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 2023 연례서한에 적힌 김병주 회장의 서명. MBK파트너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임기응변'이 아닌 '신뢰 회복'이다.
기업회생 신청 이후 김 회장의 사재출연 약속 등 책임 있는 자세에 홈플러스 사태가 잠시 잦아드는 듯 했으나 최근 다시 논란이 커지는 것도 결국 신뢰의 문제다.
시장이 김 회장의 사재출연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날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고소고발을 예고한 것도, 전날 국회에서 야3당이 김 회장에게 10일까지 구체적 사재출연 계획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것도, 그 전날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이 사재출연의 구체적 계획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결국 시장의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아서다.
언론에 '약간의 잡음'이 일었다고 홈페이지에서 연례서한을 내리는 것은 임기응변이다. 그런다고 서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구체적 계획이 없다면 홈플러스 사태 관련 MBK파트너스의 약속 역시 당장의 어려움을 잠시 넘기기 위한 임기응변으로 여겨질 것이다.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는 약속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은 연례서한에서 앞으로 20년 뒤 MBK파트너스를 아시아 최고의 사모펀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역의 작은 전당포도 신뢰를 바탕에 둔다. 아시아 최고의 사모펀드를 꿈꾼다면 당연히 시장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임기응변으로는 아시아 최고는 물론 국내 최고 사모펀드도 될 수 없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