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기가 미국 빅테크들의 AI 과잉 투자 논란과 함께 AI 투자 축소에 따라 상당 기간 더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마이크로소프트(MS)를 중심으로 미국 빅테크가 인공지능(AI) 투자 속도를 조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당초 기대만큼 증가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HBM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사업 위기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는 5세대 HBM3E 제품의 엔비디아 대량 공급을 앞두고 있는데, 공급과잉 문제가 발생하면 기존 D램과 낸드플래시에 이어 HBM에서도 수익성을 높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D램, 낸드 등 범용 메모리반도체에서 중국의 추격이 빨라진 데다, HBM 수익성까지 악화한다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위기는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 AI 과잉 투자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서, 국내 메모리반도체 기업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투자은행 티디 코웬은 21일 보고서를 통해 MS가 최근 미국 내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을 최소 2개 이상 취소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MS는 데이터센터 운영업체와 체결한 사전 협의를 정식 임대로 전환하지 않았으며, 취소된 데이터세넡 규모는 전력공급 기준으로 수백 메가와트(MW)에 달한다고 티디 코웬은 전했다.
티디 코웬 측은 “현재 상황은 MS가 AI 설비 과잉 공급 문제를 조정하기 위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팟캐스터 드와케시 파텔의 방송에 출연해 “AI가 산업혁명 급의 기술변화라고 말하려면,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10%에 도달할 정도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며 “공급과 수요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지만, 과거의 투자를 수요로 전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AI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지 않거나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 투자를 늦출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투자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MS의 투자 속도 조절에 따라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올해 AI 투자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축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중국 딥시크 등장으로 미국 빅테크들은 AI 투자를 더 효율적으로 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내부 모습. <마이크로소프트> |
이 같은 미국 빅테크들의 AI 투자 둔화는 삼성전자 반도체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HBM3E를 본격적으로 양산하는데, 빅테크의 AI 투자 축소는 HBM 공급 과잉과 함께 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웨이퍼 기준으로 월 15만 장 정도의 HBM 생산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미 HBM3E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설비능력 수준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은 최신 HBM3E 공급을 위해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미국 마이크론도 월 2만장에서 6만장으로 HBM 생산능력을 확장하고 있는 만큼, 올해는 HBM 공급량이 지난해 대비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 측은 “2025년 HBM 공급량이 월 40만장에 달하는 반면, 수요는 월 16만8천 장에 그칠 것”이라며 “주요 메모리 제조사들의 지나친 생산 경쟁이 공급량을 크게 늘려 수요량을 앞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HBM 공급 과잉으로 판매 가격이 떨어지면,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한다 하더라도 지난해 SK하이닉스와 같은 높은 실적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진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측은 “올해 1분기 HBM 가격은 전분기 대비 0~5% 하락할 것”이라며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HBM 전환과 참여자 확대가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범용 D램 사업 전망도 밝지 않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DDR5 양산에 성공하면서, 올해 범용 D램도 공급 과잉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CXMT의 2025년 4분기 월 웨이퍼 기준 D램 생산능력 점유율은 약 15.4%로. 마이크론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빠른 추격은 범용 D램에서 약 41%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 직접적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쟁력이 약화된 메모리반도체는 업황 둔화라는 역풍과 CXMT라는 복병 영향으로 출하 감소와 가격 하락 이중고가 불가피하다”며 “삼성전자는 이미 많은 소를 잃었고, 이제 남은 것은 부서진 외양간을 다시 잘 정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