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주항공 여객기사고 긴급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여전히 많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여당임을 내세우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헌정 질서를 흔드는 주장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서다.
이에 대한민국 체제와 공동체를 지키는데 앞장서야 하는 보수 정당으로서 정치적 존립 기반마저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보수진영뿐 아니라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취임사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친 점에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국민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윤 대통령이 계엄 사흘 뒤인 지난해 12월6일 계엄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국민이 놀란 점에 사과한다는 대국민담화와 닮아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에 계엄군 투입과 정치인 체포, 사회혼란 야기를 비롯한 여러 위헌·위법적 행위에 대해 구체적 거론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국민의힘 지도부를 중심으로 나오면서 권 비대위원장이 내놓은 사과는 허울뿐인 이야기가 됐다.
권 비대위원장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현안 관련 비공개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해 "재판관 임명은 굉장히 유감이다"며 "그에 따른 책임과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날을 세웠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국무회의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최상목 대행이 결정을 했으면 헌법원칙에 부합할 텐데,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본인의사를 발표한 것은 독단적 결정 아닌가"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런 주장은 헌법과 법률에 맞지 않아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평가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한 변호사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국회가 지난해 11월 여야 합의로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3인의 추천을 정부로 보냈으면 형식상의 임명절차만 남은 것이다"며 "이를 무시한 채 2명만 임명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태도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런 권한대행을 압박하는 여당의 모습도 헌정질서를 흔드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고 말했다.
헌법 제111조에는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선별임명과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임명 자체를 비판하는 국민의힘의 행태는 모두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보수진영에서조차 이런 정부와 여당의 행태에 비판적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 보수논객인 정규재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헌법재판소는 9인이 완전체다. 입법, 행정, 사법의 궁극적 정치재판에 각 권력 그룹이 참여하게 함으로서 헌법적 균형을 달성한다”며 “국회가 소추 당사자라고 해서 추천을 거부해야 한다는 논리는 ‘정치재판’으로서 헌재의 구성원리 자체에 대해 무지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와 관련해서도 여당인 국민의힘 지도부는 여론을 호도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어 비판이 커지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현직 대통령의 구금 시도는 부적절하다"며 "국격의 문제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이에 대해 한인섭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당은 탄핵에 동조하고 비호당으로 우하향하고 있으며 탄핵찬성 의원을 구박하고 핍박하면서 국격을 갈수록 떨어뜨리고 있다"며 "국격을 진정으로 떨어뜨리는 사람이 누구고 끌어올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분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현재 정치적 성향이 극우에 가깝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보수는 그동안 가치를 지향하기보다 진영논리에 함몰돼 정치적 승리만 추구해 왔다"며 "세력화와 기득권에 집착했고 맹목적 충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으면서 과거 군사독재의 잔재가 남고 극우세력이 보수에 침투했다"고 짚었다.
김 의원은 "보수가 잘 해서 국민께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반사이익을 얻는데 집중했다"며 "우리의 이런 잘못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 간다면 국민의힘이 체제와 공동체를 지키는 보수가 아니라 일부 극렬 지지자에게만 의존하는 극우정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으로 풀이된다.
왕조시대에도 권세를 앞세우는 패도정치는 백성들에게 배격됐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힘이 '기술적 법리'를 앞세워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의힘에게 필요한 건 정치공학적 계산이 아니라 계엄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함께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서 환골탈태하려는 노력이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