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주요 점포를 제외한 나머지 매장들은 실적이 좋지 않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3사의 전국 60개 점포 가운데 올해 매출 1조 원을 넘어선 곳은 단 11곳 밖에 없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유통업계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코로나19 이후 가장 힘들었던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할 만 하다’라고 얘기하는 유통업계 관계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1년 내내 허리띠를 졸라매야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힘들었던 업계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희망퇴직’이 꼽힌다.
유통업계에서 커다란 두 축인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시행됐다. 사상 첫 희망퇴직을 받은 곳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유통업계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다.
각 기업들은 대형마트, 백화점, 면세점, 이커머스 등 채널을 가리지 않고 희망퇴직을 신청을 받으며 수익성 개선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이마트는 3월 창사 첫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12월에는 적용 대상을 확대해 다시 한 번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SSG닷컴은 법인 설립 이후 처음, G마켓은 신세계그룹에 편입된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것도 2015년 법인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희망퇴직 시행과 동시에 유신열 신세계디에프 대표이사를 포함해 임원 7~8명은 급여 20%를 반납하기로 했다.
신세계디에프 임원들의 급여 반납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두 번째다. 급여 반납이 언제까지 진행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2020년 출범한 롯데온은 6월에 사상 첫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12월에도 대상을 확대해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도 10월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롯데면세점도 6월 희망퇴직에 나섰다. 롯데면세점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것은 2022년 12월 이후 약 1년6개월만이다. 롯데면세점은 비상경영체제까지 선언하면서 모든 임원들의 급여를 20% 삭감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채널에서도 희망퇴직이 이어졌다.
배달애플리케이션(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위대한상상은 8월 첫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코카콜라음료는 11월 LG생활건강에 인수된 이후 첫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홈플러스도 12월 일부지역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유통업계가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3분기 기준 대형마트 기존점 신장률은 이마트가 –2.9%, 롯데마트가 –4.6% 기록했다.
롯데마트·슈퍼는 3분기 누적 매출 4조1101억 원, 영업이익 717억 원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4.0%, 영업이익은 2.4% 줄었다.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사상 첫 연간 적자를 냈던 이마트가 수익성 개선 분위기를 만든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이마트는 3분기 별도기준으로 누적 매출 11조6693억 원, 영업이익 195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2.0%, 영업이익은 31.1% 증가했다.
이마트는 이마트에브리데이를 흡수합병하고 통합법인으로 운영하면서 돌파구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상품의 통합 구매를 통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취지에서 진행된 전략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통합법인 시너지 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올해 7월 발생한 티메프 사태는 유통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다.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티메프 사태가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티메프 사태 이후 쿠팡·네이버 등 상위 사업자로의 쏠림이 더 심해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백화점업계는 양극화가 심해진 한 해로 평가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불황에도 연매출 3조 원을 돌파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2년 연속 매출 2조 원을 넘어섰다. 서울 이외 지역에서 2년 연속으로 매출 2조 원을 낸 것은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이 처음이다.
하지만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주요 점포를 제외한 나머지 매장들은 실적이 좋지 않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3사의 전국 60개 점포 가운데 올해 매출 1조 원을 넘어선 곳은 11곳이다. 지난해와 비교해서 1곳줄었다.
롯데백화점은 부진한 점포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6월 경남 마산점을 폐점한 데 이어 부산 센텀시티점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쇼핑이 캡스톤자산운용에 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운영하던 부산 동래점과 경북 포항점도 점포 정리 대상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세계백화점은 박주형 대표이사를, 현대백화점은 정지영 대표이사 사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앉혔다. 롯데백화점은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시켜 책임감을 더 부여했다.
백화점 3사 모두가 대표이사에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분위기로 시작했던 한 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결과다.
면세점업계는 올해도 반등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침체된 분위기가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면세사업을 접겠다는 사업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면세점 4사(롯데·신라·신세계·현대) 가운데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을 낸 곳 한 군데도 없다. 4사의 영업손실을 모두 합치면 1355억 원이다. 롯데면세점이 922억 원, 신라면세점은 258억 원, 현대면세점 171억 원, 신세계면세점이 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유통업계에서 희망퇴직을 시행한 여러 기업 가운데 임원들의 급여 삭감까지 진행한 곳이 롯데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뿐이라는 것에서도 면세업계의 절박함을 엿볼 수 있다.
정부가 면세점 특허수수료 제도를 전면 개정하겠다고 나선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국내 면세업계의 주요 고객이었던 중국인 단체관광객 회복이 더디고 소비 성향도 면세점을 이용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면서 내년에도 영업환경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이커머스 시장은 ‘C커머스’와 ‘티메프 사태’로 정리할 수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의 모기업인 알리바바그룹은 올해 3월 국내 물류센터 설립 등을 위해 3년 동안 11억 달러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테무도 4월 한국 법인을 설립하면서 국내 진출을 선언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11월 알리익스프레스 월간활성이용자 수(MAU)는 968만 명을 기록했다. 쿠팡(3220만 명) 월간활성이용자 수는 10월보다 0.5% 증가했지만 알리익스프레스 월간활성이용자 수는 6.9% 늘었다.
테무 월간활성이용자 수는 733만 명을 기록하면서 11번가를 156만 명 차이로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 이커머스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세계그룹이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한 것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가 얼만큼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올해 7월 발생한 티메프 사태는 유통업계를 들썩이게 한 주요 이슈였다.
큐텐 계열사인 티몬이 대금 정산 무기한 지연을 선언하면서 판매자들이 판매 상품을 일괄 취소했고 소비자들도 피해를 입게 됐다. 큐텐을 모기업으로 하고 있는 위메프에도 같은 피해가 발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판매자와 소비자들의 손해는 1조6천억 원 정도다.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티메프 사태가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 확대가 절실한 플랫폼들에게는 큰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커머스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진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읽힌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티메프 사태 이후 쿠팡·네이버 등 상위 사업자로의 쏠림이 더 심해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 티메프 사태 이후 주로 이용하는 쇼핑몰을 변경하는 소비자 가운데 64%는 쿠팡, 53.4%는 네이버, 34.9%는 G마켓을 대신 이용하겠다고 응답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