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탄핵 정국과 경기침체 우려 속 정부의 대출 조이기 흐름에 변화가 생길 조짐이 보이면서 시중은행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년부터 대출 문턱을 낮출 준비를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확고한 관리 방침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기준금리 인하 기조 속 내년 가계대출 증가세에 다시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2025년 1월 실행분 대상으로 가계대출 제한 조치를 완화하면서 연초 대출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전날부터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 취급 한도를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늘리고 중단됐던 1주택자의 전세대출 취급을 재개하는 등 가계대출 제한 조치를 완화했다.
하나은행은 12일부터 하나원큐주담대와 하나원큐전세대출 등 비대면 가계대출 상품을 다시 취급하기 시작했고 KB국민은행은 15일부터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를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늘렸다.
은행권은 올해 하반기 들어 금융당국 압박에 금리를 올리고 각종 상품 취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문턱을 높였다.
금융감독원이 2025년에는 가계대출 증가액이 연초 계획을 넘어선 은행에는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낮추기로 하는 등 사실상의 ‘총량규제’책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었다.
다만 은행권이 연간 단위로 계획을 내놓는 만큼 해가 바뀌는 내년 1월에는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경쟁 예고에 연초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한국은행이 10월과 11월에 이어 내년에도 기준금리 인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도 가계대출 확대에 힘을 싣는 요인으로 꼽힌다. 기준금리 인하는 시차를 두고 시장금리와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도 올해처럼 마냥 가계대출을 엄격히 관리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계엄 사태에서 시작된 정치적 불확실성에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서다. 경기침체 우려는 계엄 사태 이전부터 나왔는데 계엄 사태에 따른 대외신인도 등의 문제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여겨진다.
▲ 김병환 금융위원장(오른쪽)이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방송>
금감원은 결국 올해 8월 공언한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이 연초 계획을 넘겼을 때 부과하는 페널티도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올해 초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담은 전세대출 DSR 확대 적용을 두고도 여전히 고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지방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그동안 강경한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이어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어조에도 계엄 사태 이후 변화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원장은 15일 금감원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대내외 불확실성을 면밀히 고려해 서민취약계층 및 지방자금 공급 등에 차질이 없도록 유연하고 세심한 가계대출 관리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는 기본적으로 기조 변화에 선을 그으면서도 경기 부양을 둔 고민도 내비치고 있다.
금융위는 16일 전세대출 DSR 적용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설명 자료를 통해 “전세대출 DSR 적용 연기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며 “정부는 가계부채를 일관되고 확고한 흐름 아래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대출규제는 상환능력에 따라야지 지역에 따라 차등화하는 것은 기본 방향과 상충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면서 “다만 지방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고 대출 규제뿐 아니라 전반적 부분을 보면서 필요한 조치를 위해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