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4-09-03 14: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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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전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관련한 구체적 논의를 뒤로 미루면서 같은 지역 안에서도 혁신도시와 비혁신도시 사이 신경전이 심해지는 등 지역 갈등이 점점 깊어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3일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과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제1차 공공기관 이전의 성과 및 미흡한 점을 짚으면서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문윤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제1차 공공기관 이전이 한계에 다다른 지역을 성장시키기 위한 외적 요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파급효과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 연구위원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제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지역이 성장하는데 영향을 끼친 좋은 정책”이라면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혁신도시에 수도권 인구가 유입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3년이 지난 2018년부터는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제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파급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뜻한다”며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들이 계속 남아있게 만들려면 혁신도시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경제성이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영모 국토연구원 국가균형발전센터 연구위원은 제1차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업, 대학, 연구소, 공공기관 협력을 통해 혁신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윤 연구위원은 “(제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비수도권 성장이라는 일부 효과를 보긴 했으나 결국 자생력을 갖춘 혁신 클러스터 형성에는 실패했다”며 “계획대로 진행된 도시 건설과는 달리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의 지원 정책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은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는 점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그는 “지방소멸 위기가 점점 심해지면서도 광역시조차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광역시와 같은 지방 거점 도시라도 살리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인구 소멸을 앞둔 지방 중소도시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에서는 이미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둘러싼 유치전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 한정희 국토교통부 혁신도시정책총괄과장이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에서 질의를 듣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충청남도는 지난해부터 공공기관 중점 유치 목표로 34개 기관을 공식적으로 선정하고 유치전에 나섰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2024년 7월25일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7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공공기관 드래프트 제도 적용을 강력히 요구했다.
공공기관 드래프트 제도는 제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진 과정에서 세종시 때문에 배제된 충남에 주요 공공기관을 우선 배정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강원특별자치도 또한 일찌감치 한국은행 본점의 춘천 이전 목표로 사전 준비에 나섰다. 지난해 공공기관 2차 이전 추진단을 꾸린 데 이어 올해 5월13일에는 강원도 공공기관 등의 유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내놓으며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조례안에는 이전 공공기관 유치 활동 및 공공기관 유치 자문위원회 설치, 기반 시설 조성을 위한 투자, 기관 이전 비용 지원, 정착 장려금·자녀 장학금·주택자금 대출이자 지원 등의 방안이 담겼다.
이외에도 많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가 공공기관 유치 선언을 하며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경쟁에 뛰어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유치전 속에서 지역 간 갈등을 넘어 혁신도시와 비혁신도시의 입장이 갈리는 등 대립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7월31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충청남도 지방정부회의에 참석해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비혁신도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혁신도시 이전 원칙의 현행법은 지방균형발전을 목표로 하는 기존 정책 취지와는 상반된다”며 “이는 지방 도시 사이 갈등과 불균형을 초래하고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비혁신 지자체의 현실 또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국혁신도시협의회는 8월14일 전북 완주군 우석대에서 열린 정례회의에서 공공기관 2차 이전은 기존 혁신도시를 대상으로만 진행돼야 한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협의회는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이 계속 연기된다면 혁신도시와 비혁신도시 간 갈등 구도가 장기화할 것”이라며 “정부의 신속한 발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공공기관 2차 이전을 둘러싸고 혁신도시와 비혁신도시 사이의 의견 차이가 확인된다.
비혁신도시인 충북 제천시·단양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엄태영 의원은 7월4일 혁신도시로 제한된 공공기관 이전 대상 지역을 비혁신도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혁신도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반면 전북혁신도시가 위치한 전주시갑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기관이 전북으로 오게 되면 혁신도시 인근에 공공기관을 이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공공기관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는 처지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관련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최근 진행된 시정 질문에서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산업은행을 두고 “여의도에 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다만 이러한 대립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2차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한 정부 차원 방침이 이른 시일 안으로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교통부에서 2023년 발주한 혁신도시 성과평가 및 정책 방향 연구용역은 올해 11월에 끝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정부에서 구체적 방안이 나오는 것은 아무리 일러도 11월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정희 국토교통부 혁신도시정책총괄과장 또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며 추진 과정과 관련해 신중한 답변을 내놨다.
그는 “2차 이전은 혁신도시가 이미 있기 때문에 1차 이전 때보다 따져야 하는 변수가 더 많아진 상황”이라며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관련해 단순한 정량 평가를 넘어서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현재 분석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