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덴마크 해운업체 'A.P.몰러-머스크(A.P.Moller-Maersk)'사 소속 세계 최초 메탄올 컨테이너선 '로라 머스크'호. 한국 현대미포조선이 건조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선박 탄소배출 규제가 단기적으로 보면 해운업계의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규제에 따른 효과는 배출권 규제가 100% 적용되는 2027년 이후에나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일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NEF)는 노르웨이선급협회(DNV)의 연구 결과를 참고해 해운업계가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도(EU ETS)'에 따라 배출권을 구매하는 편이 대체연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저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배출권
가격을 90유로라고 가정했을 때 해운업계는 화석연료 1톤당 300유로(약 42만 원)의 추가 운임을 부담하게 된다.
2022년 초 네덜란드 로테르담 시장에서 거래된 초저유황 대체연료 가격은 톤당 850달러(약 112만 원)이었다. 배출권 구매가 대체연료 사용보다 60% 이상 저렴한 셈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유럽연합의 규제가 의도한 대로 해운업계를 당장 내년부터 발빠르게 대체연료로 전환시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대체연료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번 달 노르웨이선급협회(DNV)에서 진행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향후 해운업계가 현재 추세대로 대체연료 사용을 늘리면 2030년에는 연간 1700만 톤이 필요할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 기준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메탄올과 암모니아 등 친환경 대체연료의 약 30~40%에 달하는 양이다.
노르웨이선급협회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항공기 등 다른 업계에서도 대체연료 수요가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해운업계 전체가 쓸 수 있는 충분한 연료는 확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규제를 통해 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이 줄어들 것으로 평가했다.
유럽연합에서 지정한 '전환 기간(transition period)'이 끝나면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배출권 구매 비율이 2026년부터 70%, 2027년부터는 100%로 점차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유럽연합 소속국가의 항만으로 들어오는 선박은 2025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40%에 해당하는 배출권만 사면 되지만, 4년 후엔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노르웨이선급협회 분석에 따르면 2025년 기준으로 아시아와 유럽 사이 선박 한 척당 약 81만 유로(약 11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2027년부터는 두 배가 넘는 약 200만 유로(약 28억 원)가 배출권 구매 비용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배출권을 구매하는 것보다 대체연료를 사용하거나 풍력 돛 등 다른 연료 대체수단을 개발하는 편이 더 저렴해질 수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실장은 “이미 친환경 선박을 새롭게 개발해서 운행하고 있는 선사들도 있을 것"이라며 "통상적으로 봤을 때 중급 선사들이 대비가 미흡했을 가능성이 있어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비용 상승에 따라 화주(화물 소유주)한테도 영향이 갈 수 있어 저희(한국무역협회)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고 덧붙였다.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규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해운업계의 대응 필요성을 높인다.
염정훈 기후솔루션 해운 책임연구원은 “국제해사기구(IMO)는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에 가격을 부가하는 조치를 논의하고 이행할 예정"이라며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조치를 도입하는 법을 발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국제해양오염책임법(International Maritime Pollutionc Accountability Act)를 발의한 상태다. 염 책임연구원은 "이 법이 통과된다면 대형 외국 선박들에 탄소 1톤당 미화 150달러가 부과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현재 화석연료를 쓰며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려 하는 해운업체들은 장기적으로는 수소와 같은 무탄소 연료로 전환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염 책임연구원은 조언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