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마이크론이 반도체 업계 최고 수준의 처리 속도를 내는 HBM3(4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를 개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던 HBM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HBM을 메모리 사업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마이크론이 HBM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당분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업계 선두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의 'HBM3 2세대'(4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2세대) 개발실적에도 불구하고 HBM시장 양강구도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마이크론 반도체 생산공장. <마이크론>
3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4세대 HBM인 ‘HBM3(Gen2)’를 최근 개발해 고객사에 제품 샘플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큰폭으로 향상시킨 고성능 메모리다. HBM은 세대별로 HBM(1세대), HBM2(2세대), HBM2E(3세대), HBM3(4세대)로 나뉜다.
마이크론은 자사 홈페이지에 이번에 개발한 HBM3(Gen2)와 관련해 "9.2Gb/s 이상의 핀(pin)당 데이터 전송률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하반기 출시를 예고한 4세대 HBM의 다음제품인 HBM3E의 8Gb/s를 웃도는 수준에 해당한다.
이를 놓고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마이크론이 HBM3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며 “마이크론이 이번에 개발한 제품을 HBM3 2세대(Gen2)라고 부르는 건 경쟁사의 HBM3 제품보다 출시가 늦었지만 더 빠르고 밀도가 높으며 더 발전된 반도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2022년 HBM 시장점유율을 보면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40%, 마이크론 10%이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HBM 시장의 양강구도는 마이크론이 기존 제품보다 뛰어난 성능의 제품 개발 실적을 공개하면서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IT전문매체 넥스트플랫폼은 “HBM 시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이외의 공급업체를 요구하고 있다”며 “시장은 적어도 3개 공급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바라봤다.
다만 마이크론의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양강구도를 당분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좀 더 우세하다.
미국 반도체시장 분석업체인 세미애널리시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마이크론의 HBM3 2세대 양산로드맵이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마이크론은 6월29일 회계연도 3분기(3~5월 분기) 실적발표 뒤 진행된 콘퍼런스콜에서 “2024년 초에 HBM3 제품의 대량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 밝힌 바 있는데 세미애널리시스가 이런 계획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 SK하이닉스가 개발한 HBM3(4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 SK하이닉스 뉴스룸 >
세미애널리시스는 “마이크론은 2024년에 HBM3E(HBM3 2세대)를 통해 HBM시장의 후발주자에서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이런 마이크론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이크론은 여전히 대량으로 양품 HBM2E(3세대 HBM)를 제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미애널리시스는 생산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구세대 HBM을 만드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마이크론이 첨단 제품인 HBM3를 양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한 것이다.
마이크론이 HBM3 분야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보다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만큼 기술적으로 아직 뒤쳐져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SK하이닉스는 2013년에 HBM 개발을 발표해 다른 두 기업보다 먼저 HBM 생산을 시작했다. HBM의 주요 경쟁력은 메모리를 패키징(포장)하고 적층하는(쌓는) 기술인데 SK하이닉스가 이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공정 노하우를 축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다소 뒤늦게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5년부터 HBM2 개발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이크론은 세 기업 가운데 가장 늦은 2018년부터 HBM사업에 투자를 시작했다.
마이크론은 HBM의 경쟁기술인 HMC(하이브리드 메모리 규브) 기술에 주력했지만 고객사들의 HMC 채택률이 낮아 뒤늦게 HBM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이 후발주자로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쫓고 있지만 두 기업 모두 HBM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어 단기간에 기술격차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론은 과거에도 176단 낸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하는 등 기술경쟁력을 과시했으나 정작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사례가 다수 있다.
세미애널리시스는 이번 마이크론의 HBM3 2세대 양산계획 발표와 관련해 “마이크론이 인공지능 서버용 메모리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며 “SK하이닉스는 차세대 기술에서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공격적으로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HBM 시장규모는 전체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주요 활용처인 인공지능 서버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만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의 성장동력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3월 “HBM은 현재 전체 D램 시장의 1.5%(비트 단위) 비중에 불과하지만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40~4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