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사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4선 의원을 지냈으나 진영을 바꿔 출마한 선거에선 3연속 낙선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비로소 고향인 충청북도에서 도지사로 선출됐으나 취임 이후 갖은 논란이 이어지다가 관내 대형 사고 여파로 사법리스크까지 직면하게 됐다.
▲ 김영환 충청북도지사가 7월20일 충청북도청에 마련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합동 분향소에 방문해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지사는 24명의 사상자를 낸 청주 오송 궁평제2지하차도 참사 발생 때 늑장 대처로 비판을 받았는데 5일 만의 사과에서 면피성 발언을 해 논란이 더욱 커졌다.
김 지사는 20일 충청북도청에 마련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합동 분향소에 방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한없는 고통을 당하고 계신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 말씀 올린다”며 "도지사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진실을 규명해 책임자를 밝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최근 언론에서 불거진 늑장 대처 논란도 해명했다.
그는 “오전 9시44분에 비서실장이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발생을 첫 보고로 올렸고 오전 10시10분에는 실종 1명, 심정지 1명으로 보고해 한두 명 사상자가 났겠다고 생각했다”며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괴산댐 월류 현장을 먼저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가 된 발언은 취재진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김 지사는 ‘심각성을 너무 늦게 파악한 것이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가 거기에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뒤 논란이 커지자 김 지사는 기자실을 다시 방문해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고 그분들을 살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에서 한 발언”이라며 “좀 더 빨리 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라고 부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김 지사의 실언에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지사를 향해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양심도, 책임감도 없는 모습이라는 국민의 질타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20일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김영환 충북지사의 발언 같은 경우에는 정말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가 실언과 부적절한 행동으로 논란을 빚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발언의 여파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 지사는 지난 3월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배상 해법안을 옹호하면서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는 발언을 해 홍역을 치렀다.
충북 제천에서 산불이 난 3월30일엔 충주지역 사회단체가 마련한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의혹을 샀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술판이 벌어질 상황이 아니었다”며 “제천 산불 상황은 시시각각 보고를 받고 있었고 당시 주민 대피령이 해제되고 헬기가 철수하는 등 곧 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약속된 일정이었지만 산불이 꺼지지 않은 상황에서 양해를 구하고 가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회한도 남는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4월2일 발생한 옥천 산불 화재 때도 신중치 못한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4월3일 진행한 도정브리핑에서 “어제(4월2일) 충북 옥천군 산불이 나서 옥천군 안내면사무소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현장에 안 간 것이 옳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재난안전실장, 소방본부장, 옥천군수와 통화한 결과 안 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5월 충북 출신 학생들이 지내고 있는 서울의 충북학사에서 열린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서 카레 밥을 먹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원들과 특식으로 갈비찜을 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 지사의 논란이 이어지면서 지역내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선영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6월22일 충북 청주에서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주최로 열린 김영환 지사 도정 1년 평가토론회에 참석해 “김영환 지사의 지난 1년은 ‘구설의 1년’이었다”며 “친일파 발언, 제천 산불 당시 술자리 논란, 황제식사 논란 등 도지사의 말실수와 구설로 피로도가 높은 최악의 도정이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오송 참사는 단순히 정무적 논란에 그치지 않고 사법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 집단에서 이번 오송 참사를 중대재해로 규정하고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김영환 충청북도지사(오늘쪽 두 번째)가 7월15일 오송 지하차도 사고 현장에 방문해 브리핑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는 20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처벌법상 공중이용시설인 궁평2지하차도의 관리상의 결함과 또 다른 공중이용시설인 미호강 제방의 설치 및 관리상의 결함이 서로 중첩한 재해이므로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북지사, 청주시장,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각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여부와 위임자인 환경부장관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는데 오송 지하차도 같은 터널은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한다.
중대시민재해 발생시 처벌 조항에 따르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했을 때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들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이 오송 참사를 서울경찰청이 직접 담당하도록 교체하고 전담수사본부의 규모를 확대하면서 김영환 지사가 경찰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0일부터 충북경찰청에서 운영하던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전담수사본부’를 서울경찰청 소속 김병찬 광역수사단장(경무관)이 담당하도록 바꾼 뒤 확대된 규모의 수사본부를 가동하고 있다.
수사본부엔 광수단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수사관 40여 명과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1개 수사팀이 파견됐다.
김영환 지사는 충북 청주 출신이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73학번으로 입학했으나 노동운동을 하다 모두 2번의 제적을 당하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으로 복역하느라 1988년에야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해 마지막 동교동계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변인, 최연소 과학기술부장관 등을 거치며 민주당을 이끌어갈 핵심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지금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며 여의도에 입성했다.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해 20년 동안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만 4선 의원을 지냈다.
2006년엔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려 했으나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이 전략 공천되며 실패를 맛봤다.
2016년에는 민주당을 탈당하고 제3지대정당인 국민의당에 합류해 인재영입위원장을 역임했다. 2016년 열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의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의 김철민 전 안산시장에게 339표 차이로 석패했다.
2018년엔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 찬성해 바른미래당으로 소속을 옮겼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추대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와 경쟁했으나 4.8%라는 아쉬운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김 지사는 2020년엔 새로운보수당과 자유한국당 등 보수·중도단체가 모인 통합추진위원회에 합류했고 그 뒤 정식으로 미래통합당에 입당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경기도 고양시 병 선거구에 전략 공천됐으나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패해 낙선했다.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직책 없이 합류한 뒤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당선에 기여했다. 2022년 지방선거에는 충북지사에 출마해 58.19%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큰 차이로 꺾고 당선됐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