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이 "화석연료 감축은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이자 국영석유회사인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사장이기도 하다. 사진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7차 기후행동장관급회의에 참석한 알 자베르 의장.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화석연료 감축은 불가피하며 필수적이다. 우리는 정직하게 각자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런 위기에 처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기후문제를 해결할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능동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레타 툰베리 같은 기후운동가나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이 아니다. 대표적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이자 국영석유회사 사장,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가 한 말이다.
로이터를 비롯한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알 자베르는 13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7차 기후행동장관급회의에 참석해 화석연료 감축을 공언했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 자격으로 발언한 것이지만 외신들은 일제히 주요뉴스로 그의 말을 전했다. COP28 주최국과 의장 선정을 둘러싼 논란을 그의 발언이 불식시켰기 때문이었다.
COP28은 세계 200여 개국이 모이는 기후변화대책 회의로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첫 총회가 개최된 이래 매년 주최국을 바꿔가면서 열린다.
그런데 올해는 화석연료로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가 주최국을,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 사장이 의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우려와 논란이 끊이기 않았다.
특히 아랍에미리트의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을 겸직하고 있는 알 자베르 의장은 화석연료 생산 감축 관련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 기후운동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5월 독일에서 열린 기후담화에서는 “화석연료로 인한 배출을 줄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해, 아랍에미리트가 COP28 주최국인데도 화석연료 감축이 아니라 탄소포집(CCS)기술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만 제거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알 자베르가 사장을 맡고 있는 아부다비석유공사를 비롯한 석유회사들이 기후대응책이라면서 많은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곳이 탄소포집기술이라 이러한 의심은 한층 높아졌다.
탄소포집기술은 이미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제거할 수 있어 매력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비교해 적은 양밖에 제거할 수 없어 한계가 있다.
이회성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의장 역시 6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탄소포집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화석연료기업들의 행태에 “공짜점심은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게다가 2022년 기준 세계 석유생산량 7위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는 화석연료 채굴을 줄이기보다는 친환경 에너지 증산에 집중하고 있어 “화석연료 감축에 힘쓰지 않는 국가가 COP28 주최국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오일체인지인터내셔널 등 연구단체에서는 이를 놓고 친환경에너지 증산이 꼭 화석연료 감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알 자베르 의장의 이번 발언으로 잦아들었다.
13일엔 의장인 그가 화석연료 감축의 필요성을 공언한데다 11일엔 아랍에미리트가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를 31%에서 40%로 상향해 발표한 덕분이었다.
이번 기후행동장관급회의에서 알 자베르는 다른 국가들에 아랍에미리트와 같이 탄소배출 저감 계획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지난해 일부 국가들이 파리협정 목표를 철회를 고려한 것을 지적하며 “(발표한) 계획이 파리협정 목표를 지키도록 이끌어 줄 것”이라며 “이 계획은 어두운 밤에 이정표가 되는 북극성”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권 국가의 장관급이 다수 참여하고 있었다.
알 자베르는 11월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릴 COP28 의제도 발표했다.
그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COP28 참여 국가들은 2030년까지 친환경에너지 생산을 지금보다 3배 확대하고 에너지 절약과 수소 연료 생산은 2배 늘릴 계획을 세워야 한다.
추가로 그는 세계은행을 비롯한 선진국 자본을 투입해 1천억 달러 규모의 개발도상국 기후피해 복구펀드를 구성할 것이라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어 이번 COP28에서는 최초로 파리협정 이행여부를 발표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도 진행될 것이라는 계획도 전했다.
파리협정에 참여한 각국은 9월까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한국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알 자베르 의장은 2018년에는 국무장관으로, 2022년에는 산업장관으로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다.
▲ 2022년 6월 한국을 방문해 산업장관회담에 참석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만난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당시 그는 산업첨단기술부 장관 겸 아부다비석유공사 사장으로서 이 장관을 만나 양국의 산업기술과 에너지 공급망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연합뉴스> |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일곱 토후국 가운데 움알쿠와인의 왕족으로 1973년생인 그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코번트리대학에서 경제ㆍ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후와 관련해선 2009년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의 에너지ㆍ기후변화 자문그룹 위원을 지낸 적이 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아랍에미리트 외교부의 에너지·기후변화담당 차관보를 역임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