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으로 2조5천억 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범현대가 기업들이 전략적(SI)투자자로 참여해 인수자금 가운데 1조 원가량을 담당할 것이라는 구체적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면서 애초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부정적으로 봤다가 범현대가와 시너지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 시각을 보내고 있다.
라진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건설사와 항공사의 시너지가 아닌 범현대가와 항공업의 시너지”라며 “직접적 연관이 있는 범현대가 기업은 추가적 전략적투자자로 합세해 지분투자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바라봤다.
범현대가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2세와 정 창업주 형제들의 2세, 혹은 그들의 자녀인 3세가 이끄는 기업을 통칭하는 말로 여전히 재계에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2019년 기준 자산규모 5조 원이 넘는 59개 대기업집단에도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 HDC그룹, 한라그룹 등 5개 그룹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범현대가 기업 가운데 현대백화점, 현대오일뱅크, 현대해상화재보험, 한라홀딩스, 현대종합상사, KCC 등이 아시아나항공 지분 인수 혹은 사업제휴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꼽힌다.
현대백화점과 현대오일뱅크, 현대해상화재보험은 각각 정주영 창업주의 3남과 6남, 7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다.
한라홀딩스는 정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현대종합상사는 정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인 정신영 전 언론인의 아들인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 KCC는 정 창업주의 여섯째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진 KCC그룹 회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정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아들로 1962년 태어나 ‘몽’자 항렬 주요 경영자 가운데 어린 편에 속한다.
정몽규 회장은 '몽'자 항렬의 범현대가 기업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언도 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범현대가의 지분투자가 이뤄진다면 정몽규 회장은 사촌 형들과 협력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셈이다.
각 기업별로 협력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보면 현대백화점은 면세점과 기내식, 현대오일뱅크는 항공유, 현대해상은 항공기 보험, 한라홀딩스와 현대종합상사, KCC는 물류 등이 꼽힌다.
정몽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품으면 장기적으로 정 창업주의 2남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 등에서 협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협력이 본격화하면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은 현대아산과 관광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현대아산은 정 창업주의 다섯째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실제 범현대가 기업에서 일하는 임직원이 출장용으로만 아시아나항공을 적극 이용해도 실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기업집단 현황공시에 따르면 1분기 기준 현대자동차그룹 16만2천 명, 현대중공업그룹 3만1천 명, 현대백화점그룹 1만7천 명, HDC그룹 9500명, 한라그룹 7700명 등 5개 범현대가 대기업집단에서 일하는 직원 수만 23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정몽규 회장의 과거 경영스타일을 볼 때 범현대가와 시너지 효과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정몽규 회장은 2015년 면세사업에 진출할 때도 당시 면세사업에 욕심을 내고 있던 현대백화점그룹이 아닌 호텔신라와 손잡았다.
▲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2015년 5월25일 HDC신라면세점 출범식에 참석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함께 시내 면세점 사업자선정 신청지인 용산 아이파크몰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최근 통영 천연가스발전사업에서도 사업파트너로 물류사업, 에너지사업 등을 하는 범현대가 기업이 아닌 한화에너지를 선택했다. 한화에너지는 HDC그룹과 통영 천연가스발전사업에서 손을 잡으면서 LNG공급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길을 열었다.
지분투자 가능성이 나오는 기업들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참여와 관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 없다”고 말했다.
정몽규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사업파트너를 고르는 안목과 관련해 “사람이나 회사나 각자 특색이 있고 재주가 있다”며 “시장에서 요구하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이상적 파트너와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각 기업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만큼 실제 지분투자 윤곽이 나오기 전까지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범현대가와 시너지 효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셈이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과 관련해 논의한 바 있으나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