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신라젠이 항암바이러스 펙사벡의 무용성 평가에서 8명의 종양학자로 구성된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로부터 임상을 중단할 것을 권고받았다고 밝히자 국내 바이오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신라젠은 한때 시가총액 10조 원이 넘는 국내 바이오 대장주였다. 신라젠이 개발하는 펙사벡은 기존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인다는 강점 덕분에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약 후보물질이었다.
하지만 펙사벡이 미국에서 무용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무용성 평가란 약이 치료제로서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 임상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무용성 평가에서 임상 중단을 권고하는 것은 끝까지 임상을 했을 때 참여한 환자들에 악영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의 권고사항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고되면 펙사벡의 임상3상은 중단될 공산이 크다.
문 대표는 펙사벡의 임상을 재개할 방법을 찾는 데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 의약품은 임상이 중단되더라도 문제점을 보완했을 때는 임상 재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펙사벡은 기존 간암 1차 치료제인 ‘넥사바’를 투여하기 전에 투여했을 때 환자의 생존기간이 연장되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여서 지금과 똑같은 임상계획으로는 임상 재개가 어렵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신라젠의 다른 임상들이 대부분 다른 약물과 병용치료요법이란 점을 고려하면 펙사벡 프로젝트는 사실상 신라젠 가치의 대부분”이라며 “펙사벡의 임상을 재개한다하더라도 임상2상부터 해야 할 것으로 예상돼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상 재개를 위해 임상설계를 다시 하는 방법도 있다.
문 대표는 펙사벡의 임상2a상, 임상2b상에서는 단독요법으로 진행했지만 임상3상부터 펙사벡을 투여한 뒤 넥사바를 처방하는 것으로 임상설계를 바꿨다. 펙사벡->넥사바->면역관문억제제 순으로 환자가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서 임상3상에 들어간 뒤 새로운 방법(프로토콜)을 검증하는 것을 두고 부정적 의견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상3상은 임상2상 결과를 근거로 이뤄지는 것인 만큼 임상3상부터 설계를 변경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표는 이런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2015년 10월부터 약 4년 동안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3상을 진행해왔다. 또다시 설계를 바꿔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신라젠은 올해 3월, 펙사벡의 임상3상과 상용화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1100억 원의 전환사채(CB) 발행했을 만큼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편이다. 신라젠이 2016~2018년 동안 낸 영업손실은 1564억 원에 이른다.
이런 사정 때문에 문 대표가 기술이전 등으로 외부업체와 협력해 임상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문 대표는 그동안 펙사벡의 임상3상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그만큼 많은 실패위험(리스크)도 떠안아야 했다.
펙사벡의 임상이 중단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펙사벡을 처음 개발한 곳은 미국 바이오기업 제네릭스다. 제네릭스는 2013년 펙사벡의 임상2b상에 실패했는데 2014년 신라젠이 제네릭스를 인수하면서 임상을 재개해 임상3상까지 진행해 왔다.
문 대표는 이르면 다음주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로부터 임상중지 권고의 구체적 이유에 대해 통보받은 뒤 설명회를 열어 시장과 소통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