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인도의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공장에 철강제품을 공급하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의 인도 공장에 자동차 강판을 공급하기 위해 현지에 가공공장까지 세웠는데 인도 정부가 철강제품에 관세를 매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철강제품을 놓고 인도 정부의 관세장벽 구축 움직임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인도철강협회, 인도스테인리스강개발협회 등 철강업계로부터 수입산 철강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겨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이에 인도 상무부의 무역구제총국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유럽연합 등 주요 철강 수출국의 철강제품에 반덤핑 관세 부과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앞서 7월15일 인도 상무부는 한국산 도금강판에 톤당 최대 199.53달러에 이르는 잠정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현재는 스테인리스강판에도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인도의 관세 부과 움직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도 상무부의 관세 검토대상이 강판에 집중돼 있어 열연 및 냉연 등 강판 완제품과 가공제품인 자동차강판까지 관세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인도 생산기지화 전략에 따라 인도시장에 강판 완제품과 자동차강판을 공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두 주력 계열사의 현지 생산공장을 앞세워 인도를 연 100만 대의 완성차 생산기지로 만들면서 현대제철의 강판사업과 시너지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는 인도 첸나이 생산공장에서 완성차를 연 70만 대 생산하는데 현대제철이 이에 필요한 자동차 강판의 75%를 직접 수출하는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기아차는 인도 아난타푸르에 연 30만 대의 완성차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고 있으며 8월 말 상업가동을 시작한다.
현대제철은 기아차의 인도 공장에 자동차 강판을 공급하기 위해 470억 원을 들여 아난타푸르에 자동차 강판 가공공장인 스틸서비스센터(SSC)를 3월 완공했다.
아난타푸르의 스틸서비스센터는 강판 완제품을 한국에서 공급받아 연 30만 대 분량의 자동차강판을 가공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기아차의 아난타푸르 생산공장의 가동시기에 맞춰 공급을 본격화한다.
이처럼 인도의 전략적 의미가 큰 만큼 현대제철은 인도 수출 물량에 관세가 적용되더라도 인도시장에서 발을 빼기 어렵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인도의 철강관세 검토 현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그룹 차원의 현지전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현대제철이 인도 현지 고로제철소와 관계를 강화해 판재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한 대응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현지에서 판재를 공급받는다면 아난타푸르 스틸서비스센터에 공급하기 위한 강판 수출량을 줄여 관세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일본 철강회사들은 이 방식으로 관세 부담을 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 매출 기준 2위 철강회사인 JFE스틸은 최근 인도 철강회사 JSW의 지분율을 15%에서 20%까지 늘리며 현지회사와 협력관계를 다지고 있다.
인도의 철강 관세 검토품목에 일본산 도금강판 등 가공제품이 포함돼 있어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일본 1위 철강회사 닛폰스틸앤스미모토메탈(닛폰스틸)은 아예 인도 철강사 에사르의 인수에 나서며 현지진출을 선언했다. 닛폰스틸은 2021년까지 19억 달러치 자산을 매각해 인수대금을 확보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이 인도에 직접 고로제철소를 짓는 것도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아 쉽지 않은 선택이다.
고로제철소 1기를 짓는 데는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데 현대제철은 2019년 2분기 말 기준으로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8376억 원으로 그룹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다만 인도 국영철강회사 RINL이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합작 고로제철소를 짓자는 제안을 하고 있어 관세장벽을 피해갈 여지는 있다.
인도 정부는 RINL이 한국 철강회사와 합작 고로제철소를 짓는다면 제철소 부지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제철이 인도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자 한다면 이 제안은 충분히 고려해볼만 한 것으로 파악된다. 인도는 2000년 철강 2692만 톤을 생산한 글로벌 10위 생산국이었으나 2018년에는 1억646만 톤을 생산하는 2위 생산국에 오를 정도로 철강시장의 규모가 크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RINL과의 합작 고로제철소 건설은 비용을 분담하더라도 출혈이 워낙 큰 사안이라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