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맡았던 ‘3인방’ 차한성,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을 모두 소환조사하면서 양 대법원장만 남았다는 말이 나온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사법농단 수사를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늦어도 12월 중순에는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양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에 관여했다는 것을 입증할 상당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최근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작성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확보했다. 사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판사들을 문제법관으로 규정한 이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결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6월1일 기자회견에서 “법관에게 어떤 편향된 조치를 하든가 아니면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던 것을 정면반박하는 물적 증거가 나온 셈이다.
검찰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재판 개입도 양 전 대법원장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차한성 전 대법관이 2013년 12월 일제 강제징용 재판을 지연한 뒤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기존 판결을 뒤집어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을 받아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외교부 압수수색을 통해 이 같은 경위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문건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진술 증거도 확보했다.
혐의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법원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6월 “모든 것을 사법부 수장이 다 분명하게 알 수는 없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한 뒤 칩거상태에 들어갔다.
양 전 대법원장이 침묵하는 것을 두고 ‘꼬리자르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구속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모든 사법농단의 책임을 덮어씌우고 자신은 모르쇠로 일관하겠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의 형인 임종인 고려대 교수는 CBS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아쉬운 것은 양 전 대법원장이 당당하게 나오지 않고 집에서 숨어 있는 것”이라며 “국익을 위해서 했지만 결과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나를 처벌하라고 당당하게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니 소장판사들도 양 전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서둘러 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마지막 소임이라는 말도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6월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법부의 판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7.6%에 불과했다. 반면 ‘사법부의 판결을 불신한다’를 택한 응답자는 63.9%로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2배를 넘었다.
양승태 사법부에서 법원이 재판을 두고 청와대와 정치적 거래를 한 것이 드러나면서 일반인들의 사법부를 향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5년 제10대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김홍섭 선생의 추모행사에서 “법관이 도덕성을 갖지 못할 때 사법부 전체의 권위가 손상되고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게 된다”고 말하며 ‘신뢰받는 사법부’를 강조했다.
법조계의 원로이자 사법부의 수장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이 후배 법관들을 위해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