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 아래 있는 부실 자회사들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깐깐한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회장은 대우건설과 현대상선 등 주요 자회사에 강도높은 경영 쇄신을 압박하며 책임 역시 엄중히 묻고 있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10월22일 서울 중구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예금보험공사,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서민금융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던 중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연합뉴스> |
임기 안에 산업은행의 해묵은 과제를 하나라도 더 해치우고 떠나겠다는 학자 출신 관료의 자존심도 느껴진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대우건설 임원인사에서 플랜트부문과 토목부문 임원이 대거 회사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대우건설은 임원인사를 발표한 뒤 각 본부별로 퇴출할 임원을 통보했다.
플랜트사업 본부장을 포함해 모두 30여 명 수준이다. 플랜트사업 본부장은 3월 대우건설 매각 실패에 따른 문책성 인사로 본부장 가운데 절반이 회사를 나갈 때도 자리를 지켰는데 이번에 회사를 떠났다.
이번 인사에
이동걸 회장의 의사가 크게 반영된 것으로 건설업계는 보고 있다.
산업은행이 기본적으로 자회사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최대주주인 데다 대우건설 매각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3월 대우건설 매각이 실패했을 때 대우건설의 본부장급 임원 12명은 이 회장과 면담을 했고 이 가운데 6명이 해임됐다. 대우건설이 연말 인사철이 아닐 때 임원을 대거 해임한 건 그때가 처음이다.
현대상선에서도 중국법인장이 19일 해임됐다. 연말 조직개편을 앞두고 해외법인 임원인사가 먼저 이뤄졌다.
이 회장은 이에 앞서 현대상선에도 경고장을 날렸다.
이 회장은 8일 “현대상선 실적이 나쁘면 직원을 해고하는 고강도 경영혁신을 추진하도록 하고 안일한 임직원은 즉시 퇴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취임할 때부터 줄곧 ‘고통 분담’을 강조해 왔다.
기업 구조조정에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기업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산업은행이 부실기업에 자금을 투입할 때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탓이다.
특히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등 경영 정상화에 애를 먹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이 회장이 취임하기 전에 인수된 회사들이다. 이 회장이 인수 자체를 놓고 잘못됐다고 여기고 있는 만큼 이들 회사를 향한 시선이 더 차가울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10월 열린 국감에서 이들을 놓고 “애초에 인수하지 말았어야 할 회사”라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임기 안에 매각하겠다는 의지 역시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그는 9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전 정부가) 산업은행에 강제로 떠맡긴 것이지 산업은행이 스스로 인수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도 “떠맡은 이상 내실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키워서 최대한 많이 매각하고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부실 자회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여러 차례 질타했다.
3월 대우건설 매각이 무산된 뒤 본부장들과 면담을 끝내고 “거기서 30년 이상 일하고 전무가 된 것 아니냐”며 “그런데 전부 남의 일 얘기하듯 하고 남 탓만 하더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