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이 오면 놓아주겠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7월 사의를 표했을 때
임종석 비서실장이 한 말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탁 행정관을 필요로 하고 있어 약속을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19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18일 강원도 설악산에 첫 눈이 왔으니 탁 행정관을 놓아주라”고 말했다.
18일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이 “설악산에 첫 눈이 내렸으니 약속대로 탁 행정관을 놓길 바란다”고 요구한데 이어 야당에서 재차 청와대를 향한 ‘약속 이행’ 압박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첫 눈은 10월 말~11월 초 사이에 내리는데 18일 설악산에 첫 눈이 내렸다. 지난해 11월3일보다 16일이나 이른 첫 눈이다. 첫 눈이 오면 탁 행정관을 내보내겠다던 임 실장이 예상했던 시기는 이보다 늦었을 가능성이 크다.
설악산 첫 눈에 청와대가 반응하지 않아도 서울에서 첫 눈이 내리면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첫 눈이 오는 시기는 통상적으로 11월 중순에서 11월 말이기에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은 셈이다.
청와대가 탁 행정관을 내보내기는 쉽지 않다. 아직 탁 행정관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연말로 예상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그것이다.
탁 행정관은
문재인 정부의 각종 행사를 기획해왔다. 토크콘서트식 대국민 기자회견,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보고대회, 기업인 호프미팅, 규제혁신 현장 방문, 국군의날 기념식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위해 그는 막후에서 분주하게 움직여왔다.
탁 행정관의 행사 기획은 이전 대통령 행사와 사뭇 달랐으나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정점을 찍었던 것이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매끄럽게 진행되며 여러 명장면을 연출했던 정상회담 속에서 특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도보다리 회담’은 세계가 주목한 순간으로 화제가 됐다. 그 뒤 여러 나라 정상급 회담에서 유사한 형태의 장면이 잇따라 재현됐다.
당초 임 실장은 가을에 남북 정상회담 등 중요 행사가 많다는 이유로 탁 행정관을 첫 눈 올 때까지 붙들었다. 임 실장이 말한 평양 정상회담을 이미 잘 치러냈으나 앞으로 다가올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평양 정상회담과 비교해 중요도가 높으면 높지 결코 못하지 않다.
대통령의 평양 방북은 이번이 세 번째였지만 북한 지도자의 서울 방문은 3대를 통틀어 최초다. 더욱이 북쪽이 아니라 우리쪽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의전과 행사기획 등에서 청와대가 해야 할 일 역시 더 많아진다. 탁 행정관의 역량이 필요한 이유다.
청와대가 약속대로 탁 행정관을 내보내고 다른 적임자를 찾아 행사기획을 맡기는 방법이 있지만 그러려면 상당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예정대로 연말에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한다면 후임자는 인선 후 한 두 달가량의 짧은 기간에 업무를 파악하고 이전보다 큰 역대급 행사를 치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임자의 기획력이 앞서 성과를 낸 탁 행정관과 비교되는 일도 피할 수 없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고려할 때 탁 행정관을 내보내기보다 후임자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탁 행정관은 1973년생으로 강원고등학교와 성공회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 오마이뉴스 문화사업팀장, 다음기획 뮤직컨텐츠사업본부장 등을 지내면서 공연 기획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다.
문 대통령은 탁 행정관을 깊이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2016년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을 때 양정철 전 비서관과 탁 행정관이 동행하는 등 대통련 선거 이전부터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문 대통령의 신뢰는 청와대가 탁 행정관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탁 행정관은 청와대 입성 후 과거 저서의 여성 비하 논란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몇 차례 구설수에 올랐으나 청와대는 탁 행정관을 계속 안고 가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