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180조, SK그룹 80조, 포스코그룹 45조, 현대자동차그룹 23조, KT그룹 23조 등등.
대기업들이 올해 들어 줄줄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부진한 조선업황에 지배구조 개편도 한창이라 투자계획을 내놓을 처지가 아니지만 부담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뒤 10대 그룹 가운데 롯데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만 투자와 고용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롯데그룹은 총수가 수감 중으로 경영계획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그룹은 오너3세인
정기선 부사장이 경영보폭을 넓히는 상황이다 보니 투자계획을 제시하지 않는 점이 정 부사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 부사장은 20여 년 만에 오너경영체제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직접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를 맡아 스마트선박 서비스를 주도하고 있으며 로봇사업, 의료빅데이터사업 등 신사업부문에서도 전면에 나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지배구조 개편도 활발하다. 2017년 4월 현대중공업은 인적분할을 통해 현대중공업지주를 설립하고 지주회사 체제를 출범했다.
정 부사장은 지주회사 지분 5.1%를 확보해 부친
정몽준 전 회장에 이어 2대주주에 올랐다. 정 전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으면 경영 승계가 완전히 마무리된다.
현대중공업은 8월22일 현대삼호중공업을 분할해 흡수합병함으로써 지주회사 규제 요건을 맞추기로 했다. 또 현대미포조선의 현대중공업 지분을 현대중공업지주가 매수해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기로 했다.
당초 지주회사 규제의 해소 기한은 2019년 3월까지였는데 현대중공업은 조기에 지주회사 개편을 모두 마쳤다. 지배구조를 빠르게 안정해 정 부사장의 오너경영체제를 원활하게 안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 부사장의 오너경영체제 전환은 단순한 경영권 승계와 다르다. 현대중공업은
정몽준 전 회장이 1988년 정계에 입문한 뒤 30년 동안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돼 왔는데 다시 오너경영체제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 부사장의 오너경영체제가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시장의 공감을 얻는 것이 필수다. 그런 점에서 현대중공업도 투자계획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고민을 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투자 보따리를 풀 수도 없다. 현대중공업은 일감 부족으로 2017년 군산 조선소를 가동중단했고 45개월 연속으로 해양 수주를 하지 못하면서 해양사업부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진행할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투자여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현황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중공업그룹은 2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순이익은 5조7500억 원으로 10대그룹 가운데 다섯 번째로 많았다.
순이익이 현대중공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GS는 5년간 20조 원의 투자계획을 내놓았고 순이익 1조 원도 달성하지 못한 신세계도 3년간 9조 원의 투자계획을 제시했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은 몇 년 동안 일자리를 많이 줄여 최근의 내수 부진에 기인한 경기 둔화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현대중공업에 투자계획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의당 전남도당은 7일 성명을 통해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의 분할합병 계획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현대중공업이 합당한 투자계획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지주사체제로 전환하면서 3조5천억 원의 연구개발 투자계획을 이미 내놓았다”며 “계획대로 추진하면서 각 사업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