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은행권 채용비리와 관련해 금융지주와 은행의 ‘윗선’을 정조준하면서 수사 결과에 따라 은행권의 물갈이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은행장 이상의 경영진이 구속되면 지배구조와 후계구도가 바뀌고 그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인가가 늦어지거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등 신사업 추진이 전면 재검토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 검찰 ‘채용비리’ 수사에 금융회사 지배구조 흔들리나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검찰은 은행권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한 결과를 6월 초에 내놓는다.
▲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검찰은 은행권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한 결과를 6월 초에 내놓는다.<뉴시스> |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지만 서울서부지검이 지난 30일 KEB하나은행 채용비리와 관련해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또 다시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함 행장은 하나금융그룹에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실질적 2인자로 꼽히는 만큼 함 행장의 구속영장 발부와 앞으로 수사방향에 따라 하나금융그룹의 후계구도도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은행권 채용비리와 관련해 현직 행장을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사실상 채용비리와 관련해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동안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얘기도 많이 나왔지만 인사담당 실무자들을 수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윗선을 제대로 저격한 셈이다.
현재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과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 박재경 전 BNK금융지주 사장 등 각 금융회사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던 최고경영자들이 모두 채용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함 행장뿐 아니라
김정태 회장,
윤종규 KB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은행권 채용비리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도 검찰 수사의 칼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 5곳과 은행계 금융지주 7곳 가운데 채용비리에서 자유로운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모두 함 행장의 구속영장 발부 및 수사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부분 각 은행과 금융지주의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이 임기가 많이 남았지만 검찰 수사에 따라 대거 경영공백이 빚어지거나 교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BNK금융그룹과 DGB금융그룹은 검찰의 채용비리 수사 여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BNK금융그룹은
김지완 회장과 박재경 전 사장을 중심으로 체제를 정비했지만 박재경 전 사장이 부산은행 ‘채용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되면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DGB금융그룹도 외부출신 김태오 회장과 내부출신 김경룡 대구은행장으로 새롭게 최고경영진을 꾸렸지만 김경룡 행장의 채용비리 관련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어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와 KB금융그룹 등 주요 은행계 금융그룹들 역시 지주회장 등 최고경영자를 중심으로 단단한 형태의 조직을 유지했던 만큼 수장 공백이 불거지면 그 여파를 수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은행계 금융그룹의 신사업 추진에 다시 제동 걸리나
검찰이 은행권 채용비리와 관련해 수사의 고삐를 놓지 않으면서 각 금융그룹 계열사들이 추진하고 있는 신사업의 행방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주요 최고경영자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각 금융회사들의 신사업과 관련해 인가심사를 뒤로 미루고 있다.
DGB금융지주의 하이투자증권 인수 심사, 하나자산운용의 하나UBS자산운용 지분 인수 심사, KB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심사 등이 대표적이다.
NH투자증권도 김용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채용비리 의혹에 발목이 잡혀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지 못하다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새로 선임된 뒤 한 달여 만에 인가를 받아냈다.
다른 금융회사들도 검찰의 채용비리 수사가 마무리되면 주요 안건의 심사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검찰이 주요 최고경영자를 정조준하면서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채용비리 사건이 불거지면서 은행권 신규채용도 다른 해보다 더 늦게 시작되고 있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 등 채용비리 후폭풍을 일찍 맞았거나 상대적으로 한걸음 비켜있던 곳들은 다른 해와 비슷하게 4월부터 신입직원 공채를 시작했다.
반면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은 5월에야 뒤늦게 상반기 채용계획을 내놓았고 KEB하나은행은 상반기에 신규채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부산은행 경남은행 대구은행 전북은행 광주은행 등 지방은행 5곳은 여전히 상반기 채용에 관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 채용비리 의혹이 지난해 10월부터 반 년 넘게 이어지면서 금융권의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검찰의 수사 결과와 법원의 판단에 따라 그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