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은 위기에 빠진 배에 끝까지 머물러야 할 의무가 있다.
배의 최고 책임자로서 선원을 지휘하며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큰 배일수록 경험 많고 노련한 베테랑이 선장을 맡는 이유다.
정성립 사장이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를 다시 맡았다.
대우조선해양은 29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정 사장을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에 재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정 사장의 임기는 2021년 5월까지다.
정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임시주주총회는 시작한 지 9분 만에 끝이 났다.
한 주주는 이 자리에서 정 사장의 연임을 놓고 “해 본 사람이 잘 한다. 처음 해 본 사람은 아무래도 서툴다. 정 사장이 연임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사장은 대우조선해양이라는 배에서 가장 노련한 '선원'으로 꼽힌다.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를 맡은 기간만 8년이다. 그가 대우조선해양 직원으로서 일한 기간까지 합치면 모두 23년이 된다.
정 사장은 이제 거센 파도를 넘느라 부서지고 깨진 대우조선해양을 정상화해 성장의 발판을 놓아야 한다.
정 사장은 임시 주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경영 정상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으며 앞으로 (회사가) 과거처럼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음 달부터는 월급도 다시 받을 것”이라고 경영 정상화에 자신감을 보였다.
정 사장은 경영상 어려움을 고려해 2017년 3월부터 임금을 받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 사장이 다시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투수로서 성과를 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정 사장은 그동안 무리한 해양플랜트 수주 때문에 발생한 수 조 원 규모의 손실을 털어냈고 채권단을 설득해 부도 위기에 몰린 대우조선해양을 건져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영업이익 7330억 원을 냈다. 2011년 이후 6년 만에 첫 흑자를 거뒀다. 정 사장이 2015년 STX조선해양에서 대우조선해양 구원투수로 되돌아와 등판한 지 3년 만에 거둔 성과다.
대우조선해양은 앞으로도 안정적 흑자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채권단에 자구계획안을 제출한 뒤 주요 자회사를 절반 이상 정리하면서 부실요인을 제거했고 상선부문 수주잔고에서 수익성 좋은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의 비중을 90%로 늘렸다.
곽지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삼성중공업보다 투자가치가 있다”며 “대우조선해양이 중장기적으로 LNG운반선 발주 확대 기조를 만끽하며 수혜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영업실적을 개선한 덕분에 2018년 2월 말 기준으로 자구계획안을 50% 가까이 이행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자구계획안을 2020년까지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호한 속도다.
자구계획안 이행을 끝낸다는 것은 대우조선해양이 위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는 것을 뜻한다. 정 사장이 2021년 대우조선해양 선장으로서 책임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퇴선할 수 있을지도 여기에 달렸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