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8-05-08 15:46:21
확대축소
공유하기
독일 대표 건설사인 호흐티프와 빌핑어는 동독과 서독이 통일한 시기에 최고 호황을 누렸다.
동독의 미흡한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한 투자가 급증하면서 일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개발사업이 일단락된 뒤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현재 남북 관계개선에 따라 북한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지만 통일 시대 독일 건설사들이 걸어온 길을 잘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독일 건설사, 독일 통일 때 수혜 누려
8일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통일 독일의 사례가 북한 건설시장 개방에 대비하는 국내 건설회사들의 기준(벤치마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독일 건설사들이 독일 통일 시대에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보였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분석하면 한국 건설사 주가에 대한 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독일 주민들이 베를린장벽을 망치로 무너뜨리고 있다.
독일은 공식적으로 1990년 10월에 통일했다. 하지만 이미 1989년부터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망명하기 시작하면서 동독은 1990년까지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주민 통제력을 잃어 갔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1989년부터 통일 이후 3년이 지난 1993년까지 약 5년 동안 독일 건설사 주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채 연구원은 봤다.
독일을 대표하는 건설사로는 호흐티프와 빌핑어가 있다.
호흐티프는 1874년에 설립됐는데 아테네 국제공항과 독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국제공항, 독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프랑크푸르트 메세투름 타워 등을 지었다. 2017년 해외 건설전문지 ENR이 뽑은 글로벌 시공사 순위에서 2위에 올랐다.
빌핑어는 1969~1975년에 독일 3개 건설사가 합병하여 탄생한 독일 2위 건설사다. ‘레마겐의 철교’로 알려진 독일 루덴도르프 다리와 뮌헨 올림픽경기장,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을 건설했다.
1989~1993년에 호흐티프와 빌핑어 시가총액은 각각 40%, 100% 이상 증가했다. 호흐티프와 빌핑어는 독일 주식시장에서 당시 주가수익비율(PER) 대비 각각 40~60배, 20~30배의 적정가치(밸류에이션)를 평가받았는데 이는 독일 주식시장의 다른 기업들보다 더 높은 것이었다.
독일이 통일 이후 국내총생산(GDP)의 15% 이상을 건설투자에 쏟아 부으면서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기 때문에 독일 건설업계는 큰 수혜를 입었다.
호흐티프는 이때 세계 1위 건설사로 도약하면서 1999년 미국 5위권 대형건설사였던 터너를 인수합병하며 미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 통일 이후 독일 건설사 장기침체, 국내 건설사에 어떤 의미 주나
하지만 독일이 건설산업에 지출하는 투자금액을 줄이기 시작하자 급격히 몸집을 불렸던 호흐티프와 빌핑어는 경영난을 겪게 된다. 결국 호흐티프는 스페인 건설사인 ACS그룹에 2011년 인수됐다.
채 연구원은 “(독일 건설사들이) 무리한 사세 확장과 인력 채용을 진행했지만 건설업 발주 규모가 가파르게 줄어들자 비용 부담이 과도해지면서 독일 건설업황이 기울었다”며 2000년대부터 독일 건설사들이 장기침체를 겪었다고 파악했다.
▲ 국내 건설사의 해외 플랜트 건설현장.
국내 건설사들이 2010~2012년에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때와 비교하면 독일 건설사들의 장기침체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국내 건설사들은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2010~2012년에 해외 건설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시기 건설사들이 따낸 물량은 연평균 652억 달러로 직전 5년 평균 해외 수주금액의 2배를 웃돌았다.
국내 건설사들은 해외시장에서 따낸 일감을 진행하기 위해 플랜트부문 엔지니어들을 대거 채용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수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손실이 터져 나오면서 한동안 구조조정을 진행하느라 진땀을 뺐다.
채 연구원은 통일 독일의 사례에서 국내 건설회사가 반면교사 삼아야 할 점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채 연구원은 “해외건설사를 벤치마크하는 연구를 진행할 때 통일이 주는 달콤함보다는 회사가 무분별한 확장을 했을 때 얼마나 경영위기가 올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례를 분석했다”며 “일본 건설사들도 주택시장 확장기에 무리하게 사세를 키우다가 대형건설사들의 침체가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 건자재기업들보다 시가총액이 적은 수준까지 내려갔다”고 말했다.
대한건설협회는 대북 경제협력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국내 대형 건설사들과 연구기관, 공기업, 학계 등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건설통일포럼’을 8일 열려고 했으나 최근 일정을 연기했다.
국내 일감 부족에 따른 새 시장 개척이 중요한 과제로 꼽히지만 무분별한 외형 확대보다도 내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건설업계에서도 인지하고 있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