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조경민 전 오리온 사장,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 |
아군이 적으로 돌아서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최측근이던 조경민 전 사장과 갈등으로 또 곤혹스런 처지에 몰렸다.
조 전 사장은 담 회장의 비리를 덮어쓰고 대신 옥고를 치렀다고 수년째 주장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에 불이 붙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오리온은 한동안 잠잠했던 오너 리스크가 다시 불거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MBC는 16일 오리온 고위 임원이었던 A씨의 말을 인용해 “이화경 부회장이 대선 직후인 2007년 말 이 전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금’ 1억 원을 전달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화경 부회장은 담 회장의 부인이자 창업주의 딸로 담 회장보다 오리온홀딩스 보유주식이 더 많다.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와 대학 동문이기도 하다.
오리온에 따르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A씨는 조경민 전 오리온 사장이다. 오리온은 “조 전 사장이 스포츠토토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가 점점 밝혀지자 이 책임을 담 회장과 이 부회장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라며 돈 전달은 사실무근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토토와 관련한 사정은 복잡하다.
조 전 사장은 스포츠토토 비리는 담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그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옥고를 치렀더니 돌아온 것은 손해배상 소송이라며 억울함을 주장한다.
조 전 사장은 오리온그룹에서 담 회장과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던 전문경영인이다.
한때 오리온과 온미디어, 스포츠토토 등 그룹 내 15개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 오리온그룹이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담 회장 부부의 ‘금고지기’로 대중에 알려지기도 했다.
담 회장 부부와 조 전사장의 관계가 악연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0~2011년경이다. 당시 오리온그룹은 비자금 의혹으로 검찰의 집중표적이 되면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담 회장은 위장계열사 ‘아이팩’ 임원에게 월급이나 퇴직금을 준 것처럼 꾸며 회삿돈을 빼돌리는 등 300억 원 상당의 횡령 및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2011년 11월 1심에서는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수감 8개월 만에 항소심을 통해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조 전 사장도 횡령한 돈을 담 회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수감됐다가 집행유예로 함께 풀려났다. 그러나 2013년 스포츠토토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횡령, 배임을 저지른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다시 징역형을 받았다.
이후 2014년 12월 만기 출소를 하자 스포츠토토가 조 전 사장의 비리 때문에 75억 원을 손해봤다며 2016년 5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조 전 사장은 담 회장 부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며 오리온을 겨냥한 소송과 비리 주장 등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오리온의 가장 큰 문제는 직원들이 담 회장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현재 거짓해명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혹시라도 나중에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됐을 때 후회할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담 회장이 2년 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제외된 데도 조경민 전 사장 등을 포함한 전직 임원들의 폭로가 영향을 미쳤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조 전 사장은 특사 관련 논의가 한창이던 2016년 6월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오리온 전략 조직인 에이팩스 대표이사를 맡아 신사업을 성공시키면 오리온 주가 상승분 10%를
담철곤 회장에게서 받기로 했는데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며 4월5일 공판이 열린다. 담 회장과 이 부회장은 이런 약정을 한 적이 없으며 구두 약속을 했더라도 서류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해제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1심에서는 조 전 사장이 졌다.
오리온 관계자는 "스톡옵션도 아니고 주가 상승분 10%를 약속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황당한 주장"이라며 "조 전 사장은 3년째 오리온을 향한 이런 음해행위를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 전 사장과 담 회장 측은 22일에도 법정에서 맞붙는다. 조 전 사장이 담 회장 부부의 가구 구입비 40억 원가량을 대신 내고 돌려받지 못했다며 낸 소송의 변론기일이 이날 진행된다.
이 밖에도 오리온그룹 건설 계열사인 메가마크가 조 전 사장에게 제기한 추심금 청구소송, 조 전 사장이 "오리온에 납품하는 회사는 상납하지 않고는 도저히 납품할 수 없다는 게 오랜 진리"라고 한 것을 두고 이규홍 오리온식품유한공사 대표가 제기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모두 4건이나 되는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정조준 하고있는 만큼 이번 의혹이 수사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담 회장으로서는 사드보복에서 벗어나는 데 온힘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발목이 묶일 수도 있다. 동고동락하던 최측근이 눈엣가시로 바뀐 셈인데 악연이 질기기도 하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