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대통령직 인수위조차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춘 채 국정운영에 나서는 사실상의 원년이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을 국정철학으로 내걸고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본격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 해보다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칠 새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 주요 기업과 기업인의 최대 현안을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1] 착한경영 윤리경영만이 살 길
[2] 오너리스크, 지배구조, 세대교체
[3] 혁신성장, 인수합병, 신사업
[4] 위기는 기회다
[5] 금융지주 지배구조와 금융개혁, 금융시장 변화
[6] 2018년 빛낼 CEO, 이들을 주목한다 |
삼성그룹이
문재인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발맞춰 올해부터 본격적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일방적으로 재벌개혁을 추진하기보다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을 기다린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한편으로 순환출자 규제를 강화하는 등 압박에도 나서고 있다.
삼성그룹이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현안을 풀어가려면 규제 완화 등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도 동반돼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 지배구조 개선 과제 무거워
삼성그룹은 2018년에 지배구조 개선과 컨트롤타워 구축, 주요 계열사의 리더십 공백 만회 등 만만찮은 현안을 핵심 과제로 안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 여파로 삼성그룹은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과 실형 선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삼성 미래전략실의 해체 등 큰 풍파를 겪었다.
올해도 이런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부회장의 거취가 여전히 불투명한 데다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등 주요계열사의 사장단 인사도 예정보다 늦어져 아직 실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2년차를 맞아 주요 공약이었던 재벌개혁에 본격적으로 고삐를 당기고 있는 점도 삼성그룹에 큰 압박이 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재벌개혁과 관련해 “새 정부가 출범한 뒤 반년은 변화를 준비하는 기간이었다”며 “국민들이 평가할 부분은 2018년 상반기 중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기업들이 늦어도 올해 상반기까지 정부가 요구하는 지배구조 개선과 일자리 창출,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 강화 등 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한다고 강조한다.
오너일가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불투명한 경영체제와 지배구조가 한국 재벌기업의 고질적 약점으로 지목되는 만큼 변화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특히 삼성그룹은 현대차기업과 더불어 지주사체제를 갖추지 않은 대기업으로 금융회사 등 폭넓은 계열사를 갖춰 이상적 지배구조를 갖춰내기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
삼성그룹 총수 공백사태와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이런 상황에 더 큰 악재가 되고 있다. 지배구조의 변화는 특정 계열사 또는 전문경영인 차원에서 추진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가 최대 과제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선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이유는 가장 큰 숙제로 꼽히는 금산분리와 순환출자 해소 등을 단기간에 해결하기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최근 삼성SDI가 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순환출자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한다고 결론냈다.
▲ 삼성SDI와 삼성물산의 순환출자 구조. <뉴시스> |
삼성SDI는 2015년 일부 지분만 매각하면 된다는 명령을 받았지만 공정위가 규제를 변경해 소급적용하며 삼성그룹 순환출자 해소에 압박을 강화한 것이다.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잔여지분은 전체 주식의 2% 정도다. 한꺼번에 매물이 쏟아질 경우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하거나 삼성물산에 대한 삼성그룹 지배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재벌개혁에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기 위해 이런 결정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은행과 산업자본의 상호 지배를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들어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의 관계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큰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금산분리 규제를 더 강화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대부분 처분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일각에서 나온다.
공정위는 아직 삼성SDI의 순환출자 해소 명령을 확정하지 않았고 금산분리 문제도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철저한 사후관리에 나서는 쪽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이른 시일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강력한 제재가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자발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상 현재 추진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며 “차라리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나을 정도”라고 말했다.
◆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성도 나와
삼성그룹이 정부 요구에 발맞춰 지배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려면 정부의 압박보다는 규제의 완화나 특별법 도입 등 현실적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삼성생명이 금산분리 규제에 맞추기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대량으로 매각할 경우 주식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도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다.
▲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사옥이 모여있는 서울 서초구 삼성타운. |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약점은 그룹 내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일가와 계열사의 지분율이 낮아 지배력이 불안하다는 점인데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순환출자 해소도 공정위의 개정안과 같이 실행될 경우 피해가 결국 주주들에 돌아갈 공산이 있다.
삼성그룹의 규모와 특수성,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등을 고려할 때 다른 기업과 같은 기준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삼성그룹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지배구조 개선안을 받아들여 논의한 뒤 이런 변화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나서는 것이 최대한 긍정적 변화를 이뤄내는 길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지주사전환 등을 추진할 경우 지주회사의 계열사 지분율 필요조건을 낮춰주는 특별법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삼성물산의 지주사 전환 등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