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7-12-22 15: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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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스포츠센터 ‘두손스포리움’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60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이른바 ‘필로티’ 건물구조가 사고를 키운 것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부 연구논문에서 필로티 구조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긴 하지만 구조 문제보다 출입로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는 설계오류 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감식반이 22일 오전 충청북도 제천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사고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뉴시스>
22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는 2015년 초에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아파트에서 발생했던 화재사고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제천소방서는 21일 발생한 화재와 관련해 “1층 필로티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고 봤다. 2015년 1월에 의정부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필로티 주차장에 있던 오토바이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 전체로 번진 것으로 결론났는데 이와 유사한 사고가 또 발생한 것이다.
필로티는 ‘건축물을 받치는 기둥’을 의미했으나 고층건물에서 1층을 텅 빈 공간을 만드는 구조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입주민의 사생활 침해를 막고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 건설되는 다세대주택 등은 대부분 필로티 방식으로 시공되고 있다.
필로티 방식의 건물이 화재사고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확한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충분한 사례가 축적되지 않은 데다 다른 요인이 사고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논문을 살펴보면 필로티 구조로 설계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건물에 있는 사람들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최승복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위와 최두찬 한방유비스 대표, 최돈묵 가천대학교 설비·소방공학과 교수 등은 2016년 ‘필로티 공간의 화재시 재실자의 위험성에 관한 연구’ 논문을 공동으로 냈다.
이들은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개발한 화재시뮬레이션(FDS) 프로그램을 사용해 필로티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열기와 유독가스가 확산되는지 등을 조사했다.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대피할 수 있는지도 화재피난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분석했다.
이들은 1층 필로티 주차장의 오토바이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했는데 화재가 발생한 뒤 100초가 지나면 주차장 전체가 연기로 뒤덮인다.
화재 발생 150초 이후 1층 출입구가 열린다고 가정했을 때 문이 개방된 지 3초 만에 연기는 2층까지 확산된다. 158초가 지나면서 계단과 통신피트를 통해 연기가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고 286초가 경과했을 땐 이미 각층 계단통로 전체가 연기로 가득 찼다.
화재가 발생한 지 약 12분이 지나면 이미 건물 전체가 유독가스로 가득 차는 모습이 시뮬레이션 결과 확인됐다.
연구원들은 “실제 화재현장에서 필로티를 통해 유입되는 바람과 구조헬기로부터 가해지는 풍량을 고려하면 연기의 확산속도는 더 빠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기가 확산되는 속도와 비교해 건물 내에 있는 사람들이 탈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화재경보기는 화재발생 102초 때 울렸는데 사람들은 화재 발생 사실을 확인하고 5분이 지난 402초 시점에 대피를 시작한다. 10층에 있는 사람이 밖으로 대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08초다.
연구원들은 “필로티에 화염과 유독가스가 전파되는 시간이 100초인 점을 감안하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필로티 구조의 공동주택은 필로티를 통한 일방통행 형태의 출입구를 확보하고 있어 대피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 입주민 전체가 화재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필로티 건물 자체를 화재 확산의 원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2015년 12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12층짜리 학원상가에서 불이 났으나 큰 인명피해 없이 화재가 진화됐다. 이 학원건물도 필로티 구조로 설계됐지만 주차장 공간에서 상가로 이어지는 출입구에 방화문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었고 이 방화문들이 모두 제대로 작동하면서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다.
출입문을 하나로 설계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필로티 건물들은 출입구가 단 하나만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병목현상이 생겨 탈출로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입주민의 편리성을 고려하다 보니 주차장에서 직접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만 설치하게 되는데 입구를 여러 방면으로 설치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