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공백에 대비한 대규모 인적쇄신과 조직개편에 속도를 내면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지주사 전환계획을 다시 검토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예전에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을 추진해오던 이상훈 사장과 사업재편 및 구조조정을 담당하던 정현호 사장이 이번 인사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이런 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도 있다.
▲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T/F 사장(왼쪽)과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내정자. |
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가능성을 엿보다 계획을 철회했던 지주사체제 전환 카드를 다시 꺼내들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장기 경영공백 상황까지 고려해 삼성전자가 더 안정적 지배구조를 갖출 필요성이 커졌고 정부도 삼성그룹에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일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등 5대그룹 대표와 진행한 간담회에서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위해 기업들이 더욱 분발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위원장이 이전부터 삼성그룹 ‘저격수’라는 말을 들으며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던 만큼 사실상 삼성그룹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지주사체제로 전환을 검토중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이후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등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올해 4월 이런 계획을 완전히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 사장이 3월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지주사체제 전환은 그룹 이슈와 관계없이 주주들과 약속한 사안인 만큼 예정대로 검토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는데 돌연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연말인사에서 기존 대표이사를 모두 교체하고 이 사장을 이사회 의장에 선임하는 등 대규모 변화를 실시한 만큼 상황이 다시 뒤바뀔 수도 있다.
이 사장이 삼성전자에서 지위와 역할을 더 강화한 만큼 이전에 추진하던 지주사체제 전환 논의가 다시 물 위로 떠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현호 사장이 미래전략실 인사팀장을 맡다 퇴직한 뒤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수장으로 복귀한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삼성전자는 정 사장이 CEO 보좌역으로 전자계열사들의 사업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신규조직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기존 삼성미래전략실의 기능을 삼성전자에 일부 옮겨오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검토할 당시 삼성전자 지주회사가 이런 기능을 담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던 만큼 정 사장의 복귀도 지주사체제 전환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사장과 정 사장은 모두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오너일가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만큼 이번에 삼성전자에서 중책을 맡게 된 배경에 더욱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설계사’ 역할로 발탁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되면 지주사는 전략수립과 인사, 투자 등 ‘큰 그림’을 책임지고 사업회사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구체적 사업운영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권오현 회장, 윤부근 부회장과 신종균 부회장 등 기존 대표이사들이 주요보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뒤 승진하며 권위가 더 높아진 점도 지주사 전환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권 회장과 윤 부회장, 신 부회장이 지주회사로 이동해 투자와 대외활동, 인사 등을 각각 총괄하는 역할을 맡으며 기존 미래전략실 팀장들의 역할을 일부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남 사장과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등 신임 대표이사들은 사업분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은 향후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삼성물산을 인적분할해 삼성전자 지주사와 삼성물산 지주사를 합병하는 등의 승계작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신건식 BNK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계획을 백지화했지만 이 부회장의 승계와 지배력 강화에 지배구조 개편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도 맞춰 지배구조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신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동시에 인적분할하는 등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가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일어날 수 있다며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작업이 계속 추진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부회장은 실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삼성전자는 ‘이재용 체제’를 자리잡도록 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오너중심체제를 더 강화해 경영복귀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로서는 특검의 적용한 이 부회장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현금배당을 2배로 늘리는 등 주주환원정책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주사 전환 등 주요 의사 결정과정에서 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