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검찰총장이 1990년 범죄와 전쟁 이후 24년 만에 조직폭력배에 대한 대대적 단속에 나선다. 조직폭력배가 지능화, 다양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점점 진화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합법 위장 기업형 조직폭력배 활개
27일 검찰에 따르면 국내의 조직폭력배 계보는 크게 10년 주기로 큰 변화를 겪으며 명맥을 유지해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형성된 조직폭력배는 범죄수법이 더욱 다양화된 데다 지능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김 총장은 바야흐로 ‘합법 위장 기업형’ 조직폭력배의 시대로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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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검찰총장 |
김 총장이 가장 주목하는 부문은 첨단 경제 영역이다. 조직폭력배들이 증권시장을 비롯해 각종 금융시장 등 경제 영역과 첨단 인터넷 사행산업, 사금융으로 진출을 늘이고 있다. 조직폭력배는 첨단 경제 영역을 통해 121조 원대로 추정되는 ‘지하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예전과 다른 활동 방식에 대해서도 김 총장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조직폭력배의 활동 방식은 조직이 슬림화하고 결속은 느슨해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또 단위가 소규모로 축소되는 한편으로 ‘프랜차이즈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 부산 지역 최대 조직폭력배 집단이었던 ‘칠성파’의 변화양상이 가장 좋은 사례로 꼽힌다. 칠성파는 분화를 거듭해 부산지역의 지명에 따라 진화했다. ‘온천장칠성’, ‘기장칠성’, ‘서면칠성’ 등으로 나뉜 것이다. 검찰은 이같은 사례를 파악해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심재철 대검찰청 조직범죄과장은 “과거처럼 조직다툼, 칼부림 등 폭력사태에 대한 단속만으로 날로 변화하는 조직폭력배에 대한 실효성있는 대처가 어렵다”며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과 실천방안을 마련해 조직폭력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 70년대 본격 태동, 90년대 지역별 조직 난립
폭력 조직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에 서울 종로와 명동 등 상가를 중심으로 패거리 형태로 시작됐다. 협객이라는 이름을 가장했던 김두한과 구마적, 신마적, 시라소니 등이 대표적 폭력배로 이름이 높다.
폭력배들은 해방 이후 본격적 조직화의 길을 걸었다. 한편으로 정치권과 유착한 ‘정치깡패’로 등장하는 사례도 늘었다. 장충단공원 시국강연회 난입 사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고려대학생을 집단 구타한 사건 등이 현대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다.
지금과 같은 조직폭력배의 이미지는 1970-80년대 본격태동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산업화시대 출몰한 이들이 이른바 ‘1세대’ 조직폭력배다. 서울의 토착조직인 ‘신상사파’와 호남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진출한 ‘범호남파’가 검찰에 노출됐고, 곧이어 ‘서방파’, ‘양은이파’, ‘오비파’ 등 3대 패밀리가 등장해 다툼을 벌였다.
김 총장은 1세대 조직폭력배를 갈취형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보였던 주먹 승부는 온데간데 없어진 것이다. 주먹이 오가던 소위 ‘낭만의 시대’가 지나가고 회칼과 쇠파이프 등이 조직 다툼에서 나타나는 등 무자비한 ‘야만의 폭력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보이호텔 습격, 서진룸살롱 사건,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습격, OB동재파 두목 습격 등이 뒤따랐다.
1990년대 들어 ‘2세대’ 조직폭력배가 등장했다. 이전 세대의 갈취형에 기업형이 더해져 혼합형이 유행했다. 전국 규모 조직은 와해되고 중소 규모의 조직이 난립했다. 검찰이 이 시기 대대적 조직폭력배 소탕에 나섰다고 김 총장은 기억하고 있다.
검찰은 1990년 5월을 기해 전국의 6대 지방검찰청에 강력부를 신설하고 곧이어 10월 정부 차원의 ‘범죄와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조직폭력배는 검찰의 서슬퍼런 단속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었다. 1993년의 슬롯머신 사건, 칠성파 재건 사건, 영화 ‘친구’의 소재로 사용된 부산 지역 폭력조직 습격 사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