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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렀더니 더 팔린다' 석유 가격 통제의 역설, 고유가 장기화 기류에 수요관리 대책 절실

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 2026-04-13 15: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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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하자 소비가 일정하게 줄지 않고 시기별로 크게 출렁이는 ‘수요 왜곡’ 현상이 나타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가격을 통한 수요 조절 기능이 약화되면서 정책의 초점이 가격 통제에서 수요 관리로 옮겨가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눌렀더니 더 팔린다' 석유 가격 통제의 역설, 고유가 장기화 기류에 수요관리 대책 절실
▲ 10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13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과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이후 휘발유 가격 상승세는 둔화됐으나 판매량은 시기별로 큰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격 신호가 왜곡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시점이 흔들린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유가 반영 시차와 정유사 손실 보전 등을 고려해 2주 단위로 최고가격을 재설정하고 있다. 3월13일 1차 시행 이후 휘발유 가격은 이달 1주차까지 리터당 1820~1890원 선에서 방어되며 급등세를 잡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비자 심리가 요동쳤다. 3월 2주차 25만7243㎘(킬로리터) 수준이었던 휘발유 판매량은 1차 최고가격제 시행 직후인 3월 4주차에 32만1051㎘로 전년 동기 대비 15% 이상 급증했다가 이후 4월 1주차에는 1년 전보다 12% 크게 줄었다.

업계에서는 최고가격 변동을 앞두고 주유 시점을 미루는 소비자 심리와 가격 인상 전 구매를 늘리는 현상이 맞물리면서 수요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을 통한 시장의 수요 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수급 왜곡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외부 변수도 시장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가운데, 미군이 한국시각 13일 밤부터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에 들어가기로 하면서 휴전 이후 긴장이 오히려 고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4월 2주차 들어 리터당 1900원 중반대로 오른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이날 오후 3시 현재 1995원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정상화 기대가 꺾이면서 고유가가 일시적 현상을 넘어 상수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재정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유가 상승분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지 못하면 정유사의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야 한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6개월 동안 유지하는 데만 4조2천억 원의 재정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한다. 고유가가 장기화할수록 시장 기능은 약화되고 재정부담만 확대되는 구조다.

정부는 공공기관 차량 2부제와 같은 수요 억제 정책도 병행하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10일 발표한 ‘차량 운행 제한 및 재택근무 시행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절감 효과’ 보고서를 보면 공공기관 차량 2부제와 민간 자율적 5부제 등 차량 운행 제한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석유 수요는 수송부문 기준 일평균 3.0~3.8% 수준으로 추산됐다. 공급 충격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한 규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격 통제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수요 자체를 줄이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눌렀더니 더 팔린다' 석유 가격 통제의 역설, 고유가 장기화 기류에 수요관리 대책 절실
▲ 화물선이 걸프만 인근을 항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택근무를 확대할 경우 공공과 민간을 합쳐 일평균 최대 7%대까지 석유 수요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차량 운행 제한보다 효과가 크고, 단기간 내 시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책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재택근무는 단기 위기 대응 수단이자 중기적 수요관리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며 “민간부문 재택근무는 수요 절감 잠재력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업종·직무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디지털 업무 인프라 지원, 공공부문 선도 시행 등 참여율을 제고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이번 이란 전쟁발 에너지 위기를 재생에너지 전환 계기로 삼는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방침 아래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기화를 추진하는 ‘국민주권정부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상황이다. 

박유미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산업경제이슈’ 보고서를 통해 “화석에너지 가격 상승이 재생에너지 투자 비용과 공급망 부담을 동시에 증가시키고 있다”며 “‘핵심 광물 공급 제약’이라는 새로운 병목현상과 재생에너지를 기존 전력 시스템에 통합하는 데 소요되는 총체적 시스템 구축 비용 등 이번 위기가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곧바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금껏 재생에너지 확대가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하기보다 늘어난 전력 수요를 보완하는 ‘에너지 추가’에 그쳤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보고서는 실질적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에너지 총수요 절감과 화석연료 사용 억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가격이 아닌 수요를 직접 관리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에너지 위기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정부가 가격 안정과 에너지 절약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장 기능을 보완하면서도 소비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 설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허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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