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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이랑 작가의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에 대하여

반유화 yoowha.bhan@gmail.com 2026-04-02 1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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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이랑 작가의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에 대하여
▲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랑 작가의 신간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따옴표 붙은 ‘미친년’에 관한 책이다. 사진은 2017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랑 작가의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상 ‘미쳤다’라는 말은 일상에서 좀처럼 쓰지 않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이 정신질환자를 비하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맛있는 걸 먹거나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와, 미쳤다”나, 상대에게 화가 나거나 이해가 안 갈 때의 “미친 거 아니야?”처럼 전혀 다른 맥락의 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직업적 조심스러움을 굳이 내려놓으려 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내가 그 말을 쓰는 경우는 따옴표를 달고, 즉 이른바의 의미로 쓸 때가 거의 유일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개인이 다양한 사회적 억압 속에서 ‘미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가리킬 때다. 역사 속 여성의 특이한 증상이었던 히스테리처럼, 결국 그 시대와 사회의 조건 안에서 달리 말할 방법이 없었던 이들이 자신만의 언어로서 고통을 표현한 경우가 그러하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랑 작가의 신간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바로 그 따옴표 붙은 ‘미친년’에 관한 책이다. 여기서의 ‘미친년’은 이랑의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자신이다. 책을 읽어보면 거기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윗세대의 다른 여성들 역시 넓은 의미에서 거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부록으로 발간된 ‘이랑 엄마 김경형의 이야기’를 보면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책의 초반에는 이랑의 언니의 죽음이 등장한다. 이랑은 그것을 ‘자살’이 아닌 ‘소진사(消盡死)’라고 부른다. 가족과 사회 속에서 자신을 모두 소진한 끝에 이른 죽음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엄마를 인터뷰하고, 언니의 기록을 찾고, 그 윗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묻는다. 이 소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고. 

외삼촌은 자신의 친구에게 “내 동생이 미친년인데 네가 한번 구제해보라”라며 이랑의 어머니를 떠밀었고, 그 친구는 이랑의 아버지가 된다.

‘미친’ 언어는 세대를 건너고, 그 언어가 담고 있던 상처도 함께 넘어온다.

정신분석을 한창 공부하던 시절, ‘결국 모든 인류는 윗세대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제를 안고 살아가고, 때로는 거기에 성공하지만 때로는 실패하며, 그 결과는 다음 세대에 또 전달되고… 이것이 그냥 삶의 다른 이름인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학자와 임상가들은 당연히 여기에 대한 이론을 이미 남겼다. 셀마 프레이버그(Selma Fraiberg)는 아이를 돌보는 방 안을 떠돌며 영향을 미치는, 양육자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과거를 ‘요람의 유령들(ghosts in the nursery)’이라 불렀다. 부모가 자신의 고통을 아직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을 때, 그 고통은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책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이랑의 고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빛나는 예술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 개인적으로 했던 또 다른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상처가 예술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많은 예술이 고통의 승화(sublimation)라면, 우리는 예술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야 할까? 모두가 티 없이 행복한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거나 빈약할까?

시간이 흘러 이랑의 책을 덮은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이상적인 세상에는, 수많은 ‘미친년’들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실, 이런 질문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그 질문에 오래 머물기에는 ‘지금 여기’가 너무나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가난과 폭력과 차별이 없는 상태를 가정해본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은 어차피 절대로 진공 상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조건들은 계속해서 ‘미친년’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책은 단순한 가족사나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사랑의 이름으로도 고통을 주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건넨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랑이 “죽기살기로 이 책을 읽어달라고” 한 것처럼, 더 이상의 분석을 보태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이 살아내기의 기록은 그 어떤 이론보다 더 중요한 말을 이미 들려주고 있다. 

그렇지만 마지막 질문만은 하고 싶다. ‘미친년’은 앞으로 어떻게 전수될까? 

요람의 유령처럼, 마주하지 못한 고통은 계속해서 다음 세대의 방 안을 떠돌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랑이 이 책을 쓴 것처럼, 그것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유령의 힘을 조금씩 약하게 만들 것이다.

이상적인 세상은 아직 혹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자 하고 또 알리고자 하는 사람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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