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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의 뒤집어보기] '7일까지 거부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 폭력적 동의절차에 무너지는 정보인권

김재섭 선임기자 jskim28@businesspost.co.kr 2026-02-24 10: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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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의 뒤집어보기] '7일까지 거부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 폭력적 동의절차에 무너지는 정보인권
▲ 카카오가 서비스 이용약관을 개정하며 '시행 7일 뒤까지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식의 동의 절차를 적용해 '동의 절차가 맞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시행 7일 뒤까지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최근 카카오가 이용약관을 개정하며 적용한 '동의' 방식이다. 일정 기간 가입자가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카카오 새 이용약관에는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 기록과 패턴을 분석해 기존 서비스 개선, 새 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 꽤 민감한 내용들이 담겼다.

논란이 일자, 카카오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앞서 카카오는 카카오톡 가입자들에게 광고 등을 전송하는 알림톡과 브랜드톡 같은 서비스를 내놓으면서도, 일단 보낸 뒤 가입자가 거부하지 않으면 광고 전송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을 적용해 논란을 불렀다.

이용자 '동의' 절차가 이래도 되는 걸까.

동의 절차의 엄밀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니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는 게 맞다.

동의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핵심 장치다. 사회가 발전하고 시민 의식이 높아질수록 엄밀한 동의 절차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커진다.

가부장적 의식과 기득권 세력 내지 관행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에서 상시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진보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물론 정보통신기술(IT) 발전과 대중화 흐름에 그림자처럼 수반되는 부작용 내지 역기능으로부터 이용자·소비자·국민을 지키는 수단으로도 엄밀한 동의 절차의 중요성은 크다.

정보기술(IT) 서비스 쪽에 집중해서 보자.

1990년대 후반 이후 정보화 초기엔 엄격한 동의 절차가 중시됐다. 정보화 시대의 인권을 말하는 '정보인권'을 지키는 주요 수단이란 인식이 큰 데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 가입자·이용자·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활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때는 반드시 개별 동의를 받도록 했다. 현금 살포나 경품을 앞세워 받은 동의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됐다.

관련 법에 이를 명시하고, 이렇게 적용하고 해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미국 물 좀 먹고'(얼치기 미국 유학파) 기업에 영입된 뒤 '미국 기업 따라하기'를 하며, 이를 무시하다 큰 코 다친 사례도 많다.

KT는 2004년 고급 승용차 10대와 프리미엄 가전제품 등 대규모 경품을 내걸고 시내전화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텔레마케팅과 판촉용으로 쓸 수 있게 하는 사업(소디스)에 대한 동의를 진행했다가 중단했다. 경품을 내걸고 동의를 받은 게 정보 주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에 따라서다.

당시 KT 내부에서도 정보인권 침해 우려가 컸지만, 담당 임원은 '선진국 사례'를 들어 강행했다.

결국 회사는 그동안 들인 비용과 품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해당 임원은 회사를 떠났다.

SK 계열사들 역시 포괄적 동의 절차를 거쳐 멤버십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가 활용하지도 못하고 폐기했다.

당시 이들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다 이렇게 한다"며 정보인권 침해 논란을 "새로운 마케팅 기법에 대한 반발"로 평가했다.

비용과 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개별 동의를 받지 않고 포괄 동의를 받아 일을 벌였다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당시는 방송통신위원회) 등 규제기관에 신고당하거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 신청을 당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정보인권 보호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들이 앞장섰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등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부 역할도 컸다.

국민 정보인권 보호는 순기능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정보인권 보호 장치와 관련해 유럽연합(EU)이 우리나라를 '선진 모델'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본(기업·사업자)은 이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걸림돌로 꼽으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에 편승해 이를 허물려고 했다.

미국 빅테크들도 나섰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를 앞세우기도 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며 자본 쪽 주장이 먹혔다. 갖가지 명분을 달아 정보인권 보호 장치를 허물기 시작했다.

자본 편에 선 언론의 '부역' 사례도 잦았다. 자본의 정보인권 보호장치 허물기에 눈을 감는 수준을 넘어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필요하다고 호도하기까지 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 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으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규제 완화 카드를 빼들었고, 그 때마다 개인정보 이용 동의 절차도 허물어졌다. 방미통위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같은 규제기관 수장들까지도 정권의 구호에 맞춰 '진흥'을 외치며 정보인권 보호 장치 허물기에 앞장섰다.

급기야 '이미 제공 중인 서비스를 확장하거나 개인정보 수집·활용·제공 등이 예측 가능할 때'를 분리해 동의 절차를 완화했다. 포괄 동의를 가능하게 하는 길도 텄다.

법을 정비하면서 추상적 용어를 넣어, 법적 해석에 따라서는 동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틈'을 넓혔다.

이후 기업들은 가입자·이용자·소비자·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던 행위까지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정보인권 보호 장치는 유럽연합의 적정성 평가 잣대에 턱걸이를 해야 할 만큼 허물어졌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7일까지 거부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 폭력적 동의절차에 무너지는 정보인권
▲ AI가 정보인권 보호 장치 허물기 흐름을 가속화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에이닷'이란 이름의 AI 비서 서비스를 제공 중인 SK텔레콤 사옥 앞 표지석 모습. <연합뉴스>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장 이후에는, 정보인권 보호 장치들이 더 초토화되고 있다. 이번에는 AI를 앞세워 동의 절차 등을 허물고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각각 '에이닷'과 '익시오'란 이름으로 제공 중인 'AI 비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AI 기술을 통한 이용자 편의 제공을 명분으로 통화 내용을 기록하고 보관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데, 통화자 양 측에 모두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수준의 동의를 받고 하는 지가 불투명하다.

심지어 통화 내용을 회사 서버(컴퓨터)에 6개월 동안 보관하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알리지 않다가 저장해둔 통화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는 '보안 사고'가 터진 뒤에야 실토한 사례까지 발생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통신비밀 보호를 해치고, 당사자 동의 없이 남의 통화 내용을 엿듣거나 저장(녹음)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일지만, 해당 이동통신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SK텔레콤 측은 "통화 내용을 사람이 엿듣는 게 아니라 AI 기술이 처리하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일축한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통화 내용 처리와 보관을 거부하는 것은 AI 서비스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통신비밀 침해 등 정보인권 보호 장치가 더이상 허물어지지 않게 하고 AI 역기능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AI 비서 서비스 가운데 통화내용 처리와 보관에 대해서는 따로 명확한 설명과 동의를 받는 절차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들은 'AI 3대 강국'을 외치는 정부 뒤에 숨어 귓등으로 흘린다.

정부 역시 눈을 감고 있다.

다만 이동통신 3사 가운데 KT는 "통신비밀 침해 논란이 부담스럽다"며 AI 비서 서비스를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정보인권 보호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동통신사 서버에 보관된 통화 내용은 압수수색 영장이나 협조 요청 등의 절차를 통해 언제든지 국가정보원·검찰·경찰 손에 넘어갈 수 있다.

지난해 이후 이동통신 3사에서 줄줄이 터진 통신망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사고 재발로 보관해둔 가입자 통화내용이 유출될 수 있다.  

AI가 다른 AI와 수다를 떨다 자신이 처리·학습했거나 보관 중인 특정인의 통화내용을 유출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얼핏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상상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AI 간 수다 떨기는 이미 현실화했다. 이용자가 잠자는 동안 AI끼리 수다를 떨게 하는 서비스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AI가 다른 사람에게 '고자질' 내지 '제보'하는 방식으로 통화내용 등 특정인 정보를 유출할 수도 있다. 아직은 펄쩍 뛸 얘기지만, AI 에이전트 서비스의 대중화 흐름으로 볼 때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혹시 모를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통화 내용을 어디에도 남기지 않는 게 정답이지만, 이동통신사들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AI 비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무조건 통화내용 보관에 동의하도록 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끊김 없는 서비스 제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통화 내용 보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AI 비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사실상 동의를 강제하는 꼴이다. 이용자 자기결정권 보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나아가 '옵트인'이 아닌 '옵트아웃' 방식으로 동의를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옵트인은 사전 동의를 받게 하는 것이고, 옵트아웃은 일단 저지르게 하며 상대가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동의를 받은 것으로 간주해주는 것을 말한다.

새 정보통신 서비스에 대한 동의 방식을 놓고, 2000년대 초반 이메일을 통한 광고 전송이 허용될 때 크게 공방이 일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사들은 "옵트인 방식으로 하면 품과 비용이 많이 들고 마케팅 활용 효과도 떨어진다"며 옵트아웃 방식 도입을 주장했다. 정보인권 보호 활동을 펴는 시민단체들은 '남의 집 담 안으로 전단지를 마구 뿌리게 하면서 싫으면 거부 의사를 밝히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옵트인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과기정통부와 통신사 뜻대로 됐고, 이후 가입자들은 스팸메일에 시달려왔다.

요즘은 이런 공방도 사라진 채 옵트아웃 방식이 당연 시 되는 모습이다. 일단 진행한 뒤 논란이 일면 수습하는 게 일상화하고 있다. '동의 절차는 있되, 자기결정권은 실종된 시대'란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결과적으로 AI 흐름까지 타며, 자본이 눈엣가치처럼 여기던 정보인권 보호 장치들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는 모습이다. 대형 법무법인들은 호황을 누리고, 해당 규제기관 당국자와 실무자들은 '뛰는 이직 몸값'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네 자식의 미래를 도둑질하지 말라."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구절 같아 외쳐보는데, 귀담아 듣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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