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업자는 주식의 명의신탁 관계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므로 직접 명의신탁 주식을 회수해서 정리해야 한다. 사진은 송도 바이오클러스터.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변호사 업무를 하다 보면 여러 종류의 기업을 방문하게 된다.
현장에서 대표님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
회사 밖에서 보는 대표와 회사 안에서 보는 대표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밖에서는 그냥 재미있는 사람, 술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회사에서 만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많은 임직원을 이끌고 회사를 경영하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 평온하지만 강력한 결단력을 가진 경영자의 모습이다.
모든 회사와 대표는 각자의 고유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묶을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회사의 상속 문제다.
특히 창업한 지 20년에서 25년 정도 지난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시한폭탄, '주식명의신탁' 문제다.
◆ 불가피했던 선택, 이제는 독이 되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과거 상법을 들여다봐야 한다.
1995년 이전에는 주식회사를 설립하려면 7인 이상의 발기인이 필요했다. 그 이후 2001년까지는 3인 이상이었고, 2001년 상법 개정으로 발기인 수 제한이 완전히 사라졌다.
현재는 단 1명의 발기인만으로도 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문제는 과거다. 사실상 1인이 창업하고 설립한 회사임에도, 발기인 수를 맞추기 위해 지인, 가족, 직원의 명의를 빌려 출자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주식 명의신탁'이다. 특히 발기인이 7명이 필요하던 시절에는 여러 사람의 명의를 빌려야 했다.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불가피한 조치였다.
회사가 망해서 없어졌다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해서 기업가치가 높아진 경우, 이 명의신탁은 지금 이 순간 심각한 문제가 된다.
◆ 사례1. 명의수탁자가 사망했을 때의 악몽
얼마 전 한 제조업체 대표를 만났다.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다. 1998년 회사 설립 당시 발기인 수를 맞추기 위해 명의신탁했던 직원 한 명이 5년 전 사망한 것이다.
그 직원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은 법적으로 그의 자녀 3명에게 상속되었다. 문제는 이 자녀들이 아버지와 대표 사이의 '명의신탁 관계'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표가 주식 반환을 요청하자, 자녀들은 "아버지가 회사에 헌신한 대가로 받은 주식"이라며 반환을 거부했다. 심지어 한 명은 "반환하려면 시가로 사가라"며 거액을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증명이었다. 명의신탁계약서 같은 건 애초에 작성하지 않았다. 당시 유상증자 때 대표가 주금을 납입한 자료를 찾아봤지만, 현금으로 납입해서 자금 흐름이 은행 계좌에 나타나지 않았다. 배당금도 현금으로 찾아서 반환받았던 터라 증거가 없었다.
결국 주식반환소송을 제기했지만, 명의신탁 사실을 증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소송은 2년째 진행 중이고, 대표는 결국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조정으로 마무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명의수탁자 한 명이 사망하면서, 상속인 3명과 각각 협상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된 것이다.
◆ 사례2 명의수탁자의 보조금 자격 박탈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창업자가 1998년 회사 설립 당시 친구 명의로 주식을 신탁했다.
그 친구는 이제 은퇴를 해서, 연금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 최근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네가 맡긴 주식 때문에 보조금을 못 받게 됐다. 당장 정리해달라. 안 그러면 손해배상 청구하겠다."
창업자는 당황했다. 주식을 반환받으려 해도,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2에 따라 명의자가 실제소유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보아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었다.
물론 대법원은 "상법상 발기인 수 충족 등을 위한 것으로서, 단지 장래 조세경감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막연한 사정만 있는 경우, 조세회피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려면 결국 세무당국과 다퉈야 한다. 명의수탁자는 "세금 문제는 당신이 알아서 하고, 나는 빨리 주식에서 손 떼고 싶다"는 입장이다.
해법은 있지만 함정도 많다. 주식을 돌려받는 과정 자체가 험난하다.
명의수탁자가 주식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흔하다. 회사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에 안면을 몰수하는 사례다. 명의신탁 사실을 증명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인데, 솔직히 말해서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
증거가 없다면 결국 돈을 주고 주식을 회수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실무적으로는 일단 주식반환소송을 제기한 후, 그 소송 내에서 조정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세금 문제도 있다. 조세회피 목적이 없었다는 특별한 사정까지 증명해야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다만 명의신탁을 한 기간이 오래 지나서 국세부과 제척기간이 지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세금 부분은 더 이상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창업자가 살아있을 때 정리하라.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명의신탁 주식을 반환받고, 나중에 상속절차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주식의 명의신탁 관계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창업자다.
따라서 창업자가 직접 명의신탁 주식을 회수해서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창업자가 사망하게 되면, 상속인들은 더욱더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혹시 회사에 명의신탁 주식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미리 정리하시기 바란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