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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의 뒤집어보기] KT 출입 30년 기자의 '김부장 이야기' 시청 후기, 남자화장실 앞서 뻗치기하던 누님들 잘 계시죠

김재섭 선임기자 jskim28@businesspost.co.kr 2025-11-24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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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국통신(한국전기통신공사·지금은 KT) 민영화를 앞둔 어느 날. 한겨레 정보통신 담당 기자로 한국통신을 출입하고 있을 때였다.

서울 광화문 한국통신 사옥 9층 기자실에서 일하다 화장실을 갔다오는데 40대 중반~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다섯이 다짜고짜 에워싸더니 "기자님 잠깐 시간 좀 내줄 있느냐"고 했다. "남자 화장실 앞에서 한겨레 기자님이 화장실 들르시길 한시간 이상 기다렸다"고 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KT 출입 30년 기자의 '김부장 이야기' 시청 후기, 남자화장실 앞서 뻗치기하던 누님들 잘 계시죠
▲ 어둠 속 KT 로고. 저 어둠 속에서 KT 인력 구조조정 잔혹사를 본다. <비즈니스포스트>


취재수첩을 챙겨 이끌리다시피 건물 앞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는데, 종업원이 차를 날라다준(당시는 종업원이 차리로 와서 주문을 받고 차를 갖다줬다) 뒤에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기자실로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시지, 왜 하필 남자 화장실 앞에서 뼏치기를 하셨냐'고 농담을 건네도, 웃지도, 뒷 말을 잇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데, "과장님"이라고 불려진 분이 탄식하듯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구, 내가 미친 년이지. 괜한 고집을 부려가지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눈에서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모두 한국통신 본사 직원들이었다. 부부 사원의 여성 쪽 배우자들이었다. 사내 결혼을 했고, 부부 모두 한국통신을 일터이자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부부 사원은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나야야 한다."

옆에서 덩달아 눈물을 찍어내던 다른 직원이 고개를 들더니 "상무님이 불러서 갔더니 민영화를 앞두고 인력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다며 부부 사원 중 한 명은 나가야 한다고 했다. 버티면 격오지 발령을 내겠다고 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 부부 모두 어렵게 한국통신에 입사했고, 20년 가까이 일해왔는데, 부부 사원 중 한명은 나가야 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하며 버텼다. 그런데 정말로 본사 근무하던 남편이 지방 전화국 발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어디서 들었는지 남편 지방 발령이 내가 버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남편 잡아먹을 년'이라고 했다." 회사 쪽의 물색 없는 인력 구조조정이 가정 불화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한국통신에선 민영화를 앞두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추진됐다. 114 안내와 통신선로 보수 쪽을 자회사로 분리해 외주화하고, 각 부서별로 인원을 할당해 내보냈다. 이른바 저성과자로는 할당 인원을 채우지 못하자, '부부 사원 중 한명은 나가라' '나이 많은 직원 순으로 나가라' 등 무리수가 동원됐다.

앞서 김영삼 정부가 한국통신 노조(위원장 유덕상)의 파업 추진을 이유로 '국가전복세력'이라고 몰아부친 것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시행의 빌미가 됐다. 당시 한국통신 노조는 '한국전기통신공사 직원도 노동자'를 기치로 임단협 등에 임했으나 정부의 간섭 등으로 협상이 제대로 안되자 파업 추진을 결정했다.

당시 한겨레 정보통신 담당 기자 자리에는 거의 매일 빵빵하게 채워진 우편낭 하나씩이 배달됐다. '언론사로는 한겨레 만이 한국통신 직원을 노동자로 대우해 기사를 쓰고 있다. 고맙다'는 내용의 한국통신 노조원들과 그 가족들의 감사 전보가 가득했다.

다음 날 업무상 기자들과 교류가 잦은 부서의 과장급 여직원이 찾아왔다. 그 역시 눈물부터 보이며 "김 기자님! 나 어떡해. 부부 사원이라고 한 명은 나가야 한대"라고 하소연했다. 그 여 과장은 결국 퇴직 신청서에 싸인했다.

그들 사연을 담아 '아이구 내가 미친 년이지, 뭔 영화를 보겠다고 버티다 남편 잡아먹은 년 소리까지 듣는지'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썼다. 얼마 뒤 서울 명동성당에 한국통신 노동자 2만여명이 집결했다. 이후 부부사원 중 한명은 나가라는 방침은 철회됐다.

하지만 희망퇴직을 빙자한 고참 직원·저성과자 내보내기와 업무 외주화 등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은 이후에도 상시적으로 이뤄졌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민영화 전 6만8천명에 이르던 KT 본사 임직원 수가 지금은 1만5천명 안팎으로 줄었다.

더 부부 사원 중 한 명 내쫓기보다 '고급지고 잔인한 기술'이 동원되기도 했다. 정리 대상으로 분류됐는데 버티면 격오지 발령을 내거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겼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직원을 강원도로 발령내고, 그래도 안나가자 삼천포 지점으로 발령을 내기도 했다.

또한 사무실 관리직으로 일하던 직원을 시설관리 담당으로 발령 내 '교육'을 이유로 지하 통신구를 들어가게 하거나,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여직원을 격오지로 발령 내 전봇대에 오르게 하기도 했다.

힘들거나 싫으면 희망퇴직서에 싸인하라는 거다.

과로사와 자살로 의심되는 사고도 이어졌다.

KT에선 지난해에도 '특별희망퇴직'이 추진했다. 전국 지사와 지점을 인적·물적 분리해 자회사로 분리하는 형태로 외주화하는 방식을 동원해 본사 직원 수를 줄였다. 1700여명이 처우 저하를 감수하며 자회사로 밀려났고, 2500명 가까이는 회사 측 싸인 요구를 거부해 격오지를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내부적으로 본사 인력을 경쟁사 수준으로 '슬림화'하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 직원 대상 구조조정 잔혹사가 앞으로도, 더 가혹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참고로 SK텔레콤 본사 임직원 수는 3천 명 안팎이고, LG유플러스는 그보다도 적다.

노조도 바람막이 구실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회사 측의 특별희망퇴직 추진에 합의했다가 노조원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법원은 최근 조합원들의 소송에 대해, KT 노조가 조합원들의 권익을 침해했다며 1인당 50만원을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요즘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화제라고 한다. KT 전·현직 임직원들은 "우리 회사 얘기이고, 내가 겪었던 일"이라며 울고 웃고 탄식하며 보고 있다고 한다.

지난 주말 OTT 서비스 티빙을 통해 이 드라마 몰아보기를 했다. KT를 30년 이상 출입하며 관련 기사를 써온 기자로써 '아 저거 KT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아 저거는 내가 기사로 썼던 건인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당시 썼던 기사를 찾아보기도 했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인력 구조조정이 그렇다. 이론상 최고 속도로 초고속인터넷 상품을 광고했다가 실제 속도가 그에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나와 곤욕을 치르고, 초고속인터넷 개통을 할 수 없는 지역인데도 가입 신청을 받아 반발을 사고, 사업자끼리 짬짜미를 해 정부 통신망 구축 물량 등을 높은 가격에 따낸 게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나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 등도 KT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특히 KT는 후발 시내전화 사업자 하나로텔레콤과 요금 짬짜미를 한 게 드러나 1천억원대 과징금 처분을 받기도 했다. 하나로텔레콤이 시장 진입 전략으로 요금을 후려치자, KT 마케팅 총괄 임원이 하나로텔레콤을 찾아가 시장 일부를 넘겨줄테니 요금 인하를 자제해달라고 했다는 게 뼈대다.

KT는 공정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행정지도' 핑계를 댔으나 통하지 않았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KT 출입 30년 기자의 '김부장 이야기' 시청 후기, 남자화장실 앞서 뻗치기하던 누님들 잘 계시죠
▲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사는 대기업 부장 이야기' 속 에피소드들이 통신사 이야기 같다며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통신 3사가 불똥이 튀어 회사 이미지가 나빠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까이 보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서울 북창동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화장실을 갔다오다 통신 3사 대외협력 담당 임원들이 모여 술자리를 갖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방에 얼굴을 들이밀고 "오호 딱 걸렸어. 낮에는 경쟁하는 듯 하더니 밤에는 어깨동무하고 술마시네"라고 '농담'을 건넸다. 달려나오더니 "오늘 모습은 못본 걸로 해달라"고 사정했다. 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보 교류차 가끔 만나는 것일 뿐이라며, 그래도 알려지면 공정위 담합 조사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기자수첩'(기자 컬럼)으로 썼다. 홍보실 쪽 얘기를 들어보면, 이후 통신 3사 임원들이 만나는 것은 정부나 국회에서 한자리로 불러모을 때를 빼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믿어지지 않는다.

'김부장 이야기' 드라마에선 통신 3사 영업담당 임원들이 골프를 쳤는데, 모임을 주선하고 뒤치닥꺼리를 하던 팀장이 홀인원을 했고, 골프장에 내걸린 홀인원 기념 사진이 공정위 직원 눈에 띄어 담합 조사를 받은 것으로 그려졌다.

하긴 당시에는 '주말 아침 황금 시간대 서울 곤지암 근처 고급 회원제 골프장 식당 가서 돌을 던지면 통신사 사장이나 임원이 맞을 확률이 100%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통신사들이 고급 골프장 회원권을 많이 갖고 있었고 또 많이 친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당시 KT 최고경영자에겐 국내 최고급 골프장으로 꼽히는 안양베네스트 회원권(지금은 레이크사이트 회원권으로 바뀌었다는 말도 있다)이 주어졌다. 차기 CEO 후보로 선임되는 순간, 안양베네스트 골프장이 'VIP'로 꼽아 회원권을 보내온다고 했다.

버티는 직원을 울릉도로 발령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교육을 명분으로 지하 통신구에 들어가게 하는 방식으로 퇴사를 종용하고, 해당 직원이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도 그려졌다.

드라마 얘기를 다룬 기사에 "작가가 KT 직원 출신 아녀. 어쩜 이리 KT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눈물나게 다뤘을까~"라는 댓글이 달렸다.

다만, 부부 사원 중 한 명은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해 부부사원 중 여성 배우자를 '남편 잡아먹은 년'으로 만드는 등 가정 불화를 일으키고, 희망퇴직서에 싸인하지 않는다고 서울 사는 직원을 강원도 산골 내지 경남 삼천포(지금은 사천) 지사로 발령내는 등의 사례는 빠졌다.

대신 '아산 통신케이블 공장 안전관리팀장' 자리를 만들어 보냈다. KT 측은 "우리는 통신케이블 공장이 없다"며 "드라마 속 에피소드는 KT 얘기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나저나, 2000년대 초반 KT 남자화장실서 만난 누님들 잘 살고 계시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 괜스레 옛 악몽 떠올리며 속상해하거나 눈물 흘리지 마시길!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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