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6월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2025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씨저널]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다. 핀테크 기업과 일부 금융권은 스테이블코인을 새로운 결제 혁신의 기회로 보고 도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주요 금융 선진국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 체계를 도입하며 제도권 내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강국이라는 별명과 세계 최고 수준의 가상자산 거래량을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정작 제도적 규제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금융 선진국들은 어떤 방식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다루고 있으며 한국에서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규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나아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게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 선진국은 스테이블코인 규제 어떻게, 미국 지니어스법안 실행 초읽기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스테이블코인 규제에서 몇 가지 공통된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발행 주체의 자격 제한, 담보 요건 강화, 투명성 확보, 소비자 보호 강화, 그리고 중앙 감독 기관의 직접 개입이 그것이다.
미국 하원은 7월17일 지니어스법안(GENIUS Act)라고 불리는 스테이블 코인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이 6월17일 이 법안을 통과시킨지 정확히 2개월 만이다.
지니어스법안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회사는 예금 보험에 가입된 은행 등 예금 취급기관, 연방 정부의 인가를 받은 비은행사 및 기업으로 한정된다.
또한 상장기업이 스테이블코인 발행회사를 통제하는 것은 금지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회사는 발행액 전액을 안전자산으로 담보해야 한다.
다만 최근 미국 하원에서 지니어스법안 통과에 제동을 걸면서 법안이 대폭 수정되거나, 통과가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원을 통과한 지니어스법안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해야 한다.
◆ 스테이블코인 규제 시행중인 유럽과 일본, 발행주체 엄격하게 제한
유럽연합은 지난해 12월30일 발효된 암호자산시장법(MiCA)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는 업체는 초기 자본금 35만유로를 보유하고 전자화폐 발행량의 2% 이상의 자본금을 유지해야 하며 고객예탁금의 30% 이상을 은행에 예치하여야 한다.
이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발행 업체는 지배구조 요건, 거래 기록 보존, 고객 자산과 회사 자금의 분리 보관 의무 등도 준수해야 한다.
또한 보유자는 발행자에 대해 액면가격 기준 상환청구권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한 사람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코인을 통화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면 즉시 교환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유럽연합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현재 발효되거나 상정되어 있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 법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거래량 기준 세계 1위 스테이블코인인 USDT를 발행한 ‘테더’는 유럽연합이 지정한 요건을 준수하지 못해 유럽연합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격을 획득하지 못했다.
일본은 ‘자금결제에관한법률(PSA)’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일반 은행과 등록된 자금이체업자, 신탁회사만이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
또한 발행자는 발행액 전액을 예금 또는 이와 유사한 고유동성 상품에 보유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소유자의 1:1 액면가 상환 권리 역시 보장된다.
영국과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로 발행 승인제, 준비자산 요건, 투명성 의무를 엄격히 적용한다. 특히 영국은 중앙은행(BOE)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감독하도록 해 중앙은행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하원의 '지니어스법안' 통과 제동과 관련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에 올린 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 갈무리> |
◆ 각 나라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공통분모는 중앙은행의 통제와 예치자산 확보
글로벌 사례를 종합해 보면,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핵심은 중앙은행의 통제와 예치자산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의 통제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고, 예치자산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박선종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교신저자)는 ‘우리나라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세계 스테이블코인 규제 동향의 공통점을 △스테이블코인의 범위를 명확히 한다는 점 △일정한 재무건전성 요건을 갖추고 정부의 허가를 받은 업체만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준비자산 규제를 마련하고 스테이블코인이 가치가 안정적인 지급수단으로 기능하도록 규제한다는 점 △스테이블코인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 이용자의 발행자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인정한다는 점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 대해 금융감독업무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꼽았다.
◆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국제적 공감대와 한국의 선택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1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포럼 정책토론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규제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같은 자리에서 “화폐는 공공재이며 중앙은행이 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주요국 금융당국 책임자들이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국가 경제와 금융 질서 전반에 구조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블록체인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특히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가 세계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라며 “선진국들의 사례를 참조해 하루 빨리 관련 논의를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