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쩡위친 CATL 회장이 21일(현지시각)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테크데이에 참석해 '션싱' 2세대 배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화면에 보이는 영문 C는 배터리 충방전율을 나타내는 표기로, 4C는 15분 완충을 뜻한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CATL이 에너지 밀도는 높이고 충전 시간은 단축한 전기차 배터리를 내놓으며 상용화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CATL은 가격 경쟁력에 치중하고 기술력은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제 기술적 도약으로 ‘K-배터리’ 3사를 위협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CATL은 상하이 오토쇼 개막을 앞두고 진행한 테크데이 행사에서 상용화 가능한 수준의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다수 발표했다.
쩡위친 CATL 설립자 겸 회장은 이번 행사에 참여해 “배터리 제조사가 아닌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선구자로 인식되고 싶다”는 포부를 직접 밝혔다.
실제 CATL은 이날 전기차 배터리에 상당한 수준의 기술 혁신을 이뤄낸 제품을 다수 선보였다.
우선 5분 충전으로 520㎞를 주행하는 ‘션싱’ 2세대 배터리가 소개됐다.
이 고속충전 배터리는 2위 기업인 BYD가 올해 3월 선보였던 배터리(5분 충전, 400㎞ 주행)와 비교해도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다.
여기에 올해 12월 전기 승용차용으로 상용화를 예고한 나트륨 배터리나 흑연을 사용하지 않은 전기차 보조배터리 등 신제품도 선보였다.
자체 브랜드 ‘낙스트라’로 출시되는 나트륨 배터리는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 고온이나 영하 40도에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등 기술적 장점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나트륨 배터리는 반응성이 큰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화재 발생 가능성도 낮다. 본격적인 상용화에 들어간 기업은 아직 없다.
물론 나트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나 양산 등 여전히 난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CATL은 업계 선두주자로 기술력을 증명한 셈이다.
CATL은 나트륨 배터리가 최근 전체 배터리 시장의 대세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절반 정도 대체할 것이라는 자체 전망도 내놨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2월 LFP 배터리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 적재량에서 15만2400톤을 기록한 삼원계 배터리를 넘어섰다. CATL가 개발하고 있는 나트륨 배터리도 시장 전망이 밝아 보인다.
여기에 CATL은 1회 충전으로 1500㎞ 주행이 가능한 ‘듀얼 코어’ 배터리, 음극재에서 흑연을 뺀 보조 형태 배터리까지 무대에 올렸다.
전기차는 짧은 주행거리와 부족한 충전 인프라가 약점으로 지목됐는데 CATL이 이를 해결한 기술력을 과시하는 잔치를 연 모양새다.
뉴욕타임스는 CATL이 발표한 배터리 신기술을 두고 “전기차를 가격 및 성능 측면에서 내연기관차와 경쟁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 3월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행사에 LG에너지솔루션 소듐(나트륨)이온 배터리가 전시돼 있다. < LG에너지솔루션> |
그동안 CATL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성장했다는 시각이 많았다.
테슬라가 일반형 모델엔 CATL 제품을 쓰고, 고성능 전기차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나 일본 파나소닉 배터리를 탑재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성장한 CATL이 연구개발에 장기간 대규모로 투자해 한국 배터리 3사를 비롯한 글로벌 경쟁사를 위협할 수준의 기술 역량을 축적한 셈이다.
CATL이 유럽 지역에서 배터리 공장 3곳 건립을 추진하는 등 세계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어 경쟁사로서는 위기감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배터리 3사와 CATL은 차세대 배터리 선택지에서도 일부 엇갈린 모습을 보였다.
CATL은 일명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 시기가 멀다고 과감히 판단한 뒤 다양한 대체 기술 개발에 주력해 이번 발표하는 성과를 냈다.
반면 삼성SDI를 포함한 K-배터리 기업은 토요타 등 경쟁사와 함께 전고체 배터리에 집중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 시점은 이르면 2027년으로 관측된다. 이와 달리 CATL은 당장 쓸 수 있는 기술부터 개발한 셈이다.
쩡위친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전고체 배터리로 기술 전환에 동의하지만 여러 난제가 남아 있다“며 이른 시일에 상용화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한국 업체도 나트륨 배터리나 고속충전 개발을 따라잡으려 노력하지만 기술 격차가 상당한 수준까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까지 나트륨 배터리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삼성SDI나 SK온 등도 급속 충전 기술을 소개했지만 볼보를 비롯해 소수 차종에만 상용화가 이뤄진 상황이다.
종합하면 CATL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키운 뒤 전기차 수요에 보탬이 될 배터리 기술까지 다수 갖춰내 한국 배터리 3사를 비롯한 다른 업체에 우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CNBC는 CATL이나 BYD가 소개한 초고속 충전은 높은 기술 난도와 비용 등 걸림돌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의 회의적인 시각을 전했다.
한국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중국은 실험실 기준으로 일단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 공개한 수치를 실제 고객에게 납품할 수 있는 양산 기준까지 현실화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