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왼쪽)이 2022년 5월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을 마친 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과 명함 교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씨저널]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2017년 열린 ‘제 3회 배민 신춘문예’의 대상 수상작이다. 배민 신춘문예는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들려했던 우아한형제들의 경영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스타트업 창업자의 인생과는 한 발자국 떨어져있는 삶을 살아왔다.
공학도도, 경영전문가도 아닌 ‘디자이너’다. 사울예술전문대학 실내디자인과를 졸업했고, 디자이너로 직장에서 일하면서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을 다녀 시각디자인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봉진 창업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화가를 꿈꿨는데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이성’보다 ‘감성’을 중심에 놨다.
‘우리가 무슨 민족입니까’와 같은 마케팅 카피, 자체 한글 서체 제작 및 무료 배포, 일러스트 중심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통해 배달의민족은 단순한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리고 2020년, 김봉진 창업자는 배달의민족을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에게 40억 달러에 매각하며 국내 스타트업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엑시트에 성공했다.
◆ 두 번째 창업 ‘그란데클립’, 플랫폼 DNA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그런 김봉진 창업자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그의 두 번째 회사는 ‘그란데클립’이다. 클립처럼 작고 흔한 대상에서 가치를 찾아내겠다는 의미로, 기업 소개 문구는 ‘사소한 것을 위대하게’다.
사업 영역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설명은 아니지만, 실제 그란데클립이 펼치고 있는 사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방향성은 찾을 수 있다.
그란데클립은 현재 ‘믹스커피’ 전문점 ‘뉴믹스커피’와 입을 수 있는(웨어러블) 종이장난감(페이퍼토이) 브랜드 ‘왓어원더’를 운영하고 있다.
믹스커피, 종이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지나치는 하찮은 것에 새로운 시선을 담아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봉진 창업주는 그란데클립의 믹스커피 사업과 관련해서 “지금 우리가 먹는 커피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졌는데 커피는 더 접하기 쉬워야 한다”라며 “특히 해외 시장에 한국의 ‘타먹는 커피’를 알리는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뉴믹스커피는 현재 성수 본점과 북촌점,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성수와 북촌은 모두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재미있는 점은 ‘플랫폼 사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란데클립은 2024년 7월26일 숙박 플랫폼 ‘스테이폴리오’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스테이폴리오는 여행 목적이나 분위기에 맞는 감성 숙소를 추천해주는 플랫폼이다. ‘파인다이닝’에서 착안한 ‘파인스테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 감성 기반 플랫폼, 김봉진의 창업 철학은 그대로
김봉진 창업주는 기술보다 감성, 구조보다 관계를 강조해온 사업가다. 배달의민족은 UX(사용자 경험), UI(사용자 인터페이스)부터 브랜드 스토리텔링, 광고 문구까지 사용자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놓고 설계됐으며 이는 플랫폼의 지속성과 팬덤 형성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
그란데클립의 사업 역시 모두 연결과 감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 플랫폼 사업인 스테이폴리오는 말할 것도 없고, 뉴믹스커피는 한국의 믹스커피 문화라는 감성을, 왓어원더는 어린 시절 박스를 오리고 접어 친구들과 함께 놀던 감성을 제공해준다.
디자이너 출신 창업가로서 김봉진 창업주의 감수성이 여전히 사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김봉진 창업주는 디자인을 사용자의 경험과 연결시킨다는 방식을 두 번째 창업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포인트로 두고 있다.
실제로 뉴믹스커피와 왓어원더는 모두 김 창업주가 믹스커피와 박스장난감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반영해 구상한 사업으로 알려졌다.
◆ ‘네오위즈 마피아’의 두 번째 연쇄창업가 김봉진, 그의 두 번째 창업 도전은 성공할까
김봉진 창업주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페이팔 마피아’와 비교되는 국내 IT업계의 인적 네트워크, ‘네오위즈 마피아’의 일원이다.
네오위즈 마피아는 장병규 네오위즈 창업주(현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를 중심으로 구성된 인적네트워크다. 네오위즈 초창기 멤버들이 현재 한국 IT 업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별칭이 붙었다.
일론 머스크(테슬라), 피터 틸(팔란티어), 리드 호프먼(링크드인) 등 대부분 스타트업 창업주로서 정체성을 보이고 있는 ‘페이팔 마피아’와 달리, 네오위즈 마피아의 구성원들은 창업주로서보다 전문경영인, 기술전문가, 기획전문가 등의 역할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신중호 라인 CPO, 장현국 액션스퀘어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김봉진 창업주는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과 함께 창업주로서의 정체성에 집중하고 있는 ‘네오위즈 마피아’다. 그의 두 번째 도전이 네오위즈 마피아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의 페이팔 마피아’가 되는 데 중요한 이유다.
▲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오른쪽)이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과 2021년 1월22일 서울시 송파구 배민아카데미 스튜디오에서 방송촬영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성공의 경험을 버려야 성공한다, ‘배민’의 성공 경험은 그란데클립에 ‘독’ 될까 ‘약’ 될까
다만 한쪽에서는 김봉진 창업주가 배민 성공의 경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감성과 연결을 중시하는 김봉진 창업주의 방식이 현재 소비 트렌드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계속되는 글로벌 경제 위기, 기후 위기,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소비자들이 ‘감성’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한 때 소비 트렌드였던 욜로(YOLO)가 지고 요노(YONO)가 뜨고 있기도 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2024년 9월 발간한 소비 트렌드 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으로 ‘하나만 있으면 된다(You Only Need One)’를 모토로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소비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라며 “기업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꼭 필요한 가치에 집중하는 청년층의 니즈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0년대 중후반에 유행하던 ‘감성 소비’ 트렌드가 최근에는 상당히 위축됐다”라며 “감성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 속에 실리를 담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