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부회장.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전자산업 성장을 이끌었던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별세했다.
한 부회장이 TV, 스마트폰, 로봇, 전장,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긴 기술혁신 DNA가 삼성전자가 다시 ‘초일류 기술기업’의 면모를 되찾는 데 밑바탕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한 부회장은 지난 22일 집안 행사 도중 건강에 이상이 생겨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긴급 치료를 받았으나 이날 오전 심정지로 끝내 생을 마쳤다. 향년 63세다.
갑작스러운 한 부회장의 별세 소식에 다양한 정·재계 인사들이 애도의 마음을 전달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 부회장은 이공계 출신으로 개발팀장을 거쳐 최고경영자에 올랐고,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대기업이 장악하던 세계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로 우뚝 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특히 삼성 TV가 1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혁신을 위해 밤낮없이 헌신하신 한 부회장과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애도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한 부회장은 한국 전자 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지난 37년 동안 회사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라며 “아쉽게 생각하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한 부회장은 1988년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 사원으로 입사한 ‘정통 삼성맨’이다.
2021년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부회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에 몸담으며 ‘삼성전자 TV 1위’ 신화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한 부회장은 역대 흥행한 삼성전자 TV 대부분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삼성전자를 처음 글로벌 TV 시장 1위에 올려놓은 제품은 2006년 출시된 액정표시장치(LCD) TV인 ‘보르도 TV’다. 당시 보르도 TV는 와인잔 모양의 곡선 디자인을 적용해 당시 각진 디자인이 주류였던 TV 시장에 혁신을 불러왔다.
‘TV도 가구다’라는 혁신적 콘셉트와 함께 당시로서는 얇은 두께의 LCD 패널을 활용해 선명한 화질을 구현함으로써, ‘삼성 TV’가 전 세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 부회장은 당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LCD TV랩장으로서 보르도 TV 개발에 참여했다.
2014년 출시한 ‘커브드 TV’도 한 부회장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평면이 아닌 곡면 스크린을 첨으로 채택해 시청자의 몰입감을 높인 제품으로, TV 기술의 혁신과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제품으로 평가된다.
2015년 퀀텀닷 기술을 처음 TV에 적용한 QLED TV도 한 부회장의 성과로 꼽힌다. QLED TV는 현재까지도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이다.
2022년 가전과 모바일을 아우르는 삼성전자 DX부문장을 맡은 뒤에는 기술 혁신 DNA의 영역을 스마트폰, 가전, 로봇, 전장, 의료 등으로 넓히는 데 힘써왔다.
삼성전자는 2024년 세계 최초의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폰 ‘갤럭시S24 시리즈’를 내놓으며, 세계 AI폰 시장을 선점했다.
또 사용자가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느낄 수 있도록 가전과 모바일 제품을 모두 연결하는 홈 AI 솔루션을 구축해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이 2023년 6월15일 열린 북미 최대 디스플레이 전시회 ‘인포컴 2023’에서 2023년형 스마트 사이니지 QMC 제품 앞에서 QR코드를 통해 제품의 생애주기 기반의 탄소배출량 저감활동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삼성전자> |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도 주력했다.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낙점하고, 지난해 말 로봇전문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했다. 또 의료와 IT기술을 접목한 메드텍 사업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M&A)를 추진해왔다.
그는 지난 19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존 사업은 초격차 기술 리더십으로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고, AI 산업 성장이 만들어가는 미래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로봇·메드텍·차세대 반도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부회장이 갑작스럽게 떠나면서 삼성전자는 당분간 ‘경영 공백’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삼성전자는 ‘
한종희 대표이사 유고(사망)에 따른 변경’을 사유로 삼성전자 대표이사 체제를
전영현 단독 대표이사 부회장 체제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2인 대표 체제에서 불과 4개월 만에 다시 1인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한 부회장은 DX부문장으로서 TV, 모바일, 가전을 총괄했을 뿐만 아니라, 생활가전(DA)사업부장과 품질혁신위원회 위원장도 겸임해왔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한 부회장의 후임을 찾는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장 적임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인은 TV사업 글로벌 1등을 이끌었으며,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세트부문장, DA사업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왔다”며 “37년 동안 회사에 헌신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한편 한 부회장이 평소 경영철학으로 내세운 4자성어는 '동주공제(同舟共濟)'였다. 손자병법 구지편(九地編)에 나오는 고사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강풍을 만났을 때 배에 탄 모두가 힘을 합쳐 노를 젓자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다.
삼성전자가 최근 위기론에 빠진 가운데 그의 동주공제 경영철학이 다시 한 번 조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