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이 2025년 11월29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K리그 2024 대상 시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HD현대 > |
[씨저널] 현대그룹을 세운 정주영 창업주 때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현대중공업 회장에 이어 대한축구협회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보좌하고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겸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시대를 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전문경영인.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이다.
◆ 정기선의 경영교사로서 역할로 얻은 신임
권오갑 회장은 2015년 말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그룹기획실 부실장으로 합류했을 당시, 그룹기획실장을 맡아 정 수석부회장과 호흡을 맞췄다.
당시 그룹기획실은 대외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 미래 전략 수립, 대외 업무 등을 총괄하며 그룹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핵심 부서였다.
HD현대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이곳에서
정기선 수석부회장의 본격적인 '오너 3세 경영수업'이 시작된 셈이다.
권 회장은 울산조선소에서 조선업의 수익성 회복과 원가 절감을 위한 경영 혁신에 집중하면서, 인사·재무·기획·기술·자산관리 등 기업 운영의 핵심 분야를 정 부회장과 함께 고민했다.
2016년부터 권 회장은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고 인력 운영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이끌 미래 그룹의 체계를 다지기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그 결과, 2017년 5월까지 현대중공업에서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 현대그린에너지(현 HD현대에너지솔루션), 현대글로벌서비스(현 HD현대마린솔루션) 등 5개 회사를 분리해 계열 독립을 이뤄냈다.
이후 2018년에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HD현대를 출범시켰고, 2019년에는 현대중공업을 물적 분할해 HD한국조선해양을 중간지주사로 설립했다.
이어 HD현대오일뱅크와 HD현대사이트솔루션 등 중간지주사 체제를 구축하면서 '
정기선 시대'를 열기 위한 지배구조가 구축됐다.
◆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을 보좌하다
권 회장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복심'으로 꼽힌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90년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과 현대학원 사무국장으로 정몽준 이사장의 비서역할을 맡으며 깊은 신임을 얻었다.
권 회장은 당시 현대학원의 축구단 창단과 운영 등에서 정 이사장을 보좌하면서 축구단 단장도 맡는 등 열정적으로 일했다고 한다.
1997년 서울사무소장(전무)으로 현대중공업에 복귀한 뒤에도 권 회장은 학교법인 관련 업무를 지속하면서 '정치인 정몽준 이사장'이 관여할 수 없었던 영역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로도 축구 인연은 계속돼 2004년 울산현대호랑이축구단 단장을 맡은 데 이어 3년 후인 2007년 울산현대호랑이축구단 대표이사가 됐다. 2013년엔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았다.
권 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성과를 내면서 정몽준 이사장의 신뢰는 더욱 깊어졌다.
대표적 사례가 현대오일뱅크 인수합병 뒤 통합작업이다.
권 회장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과감한 투자 결정과 조직문화 혁신을 통해 영업이익 1300억 원대 회사를 1조 원대 규모로 성장시켰다.
특히 석유화학, 윤활유, 카본블랙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회사의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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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은 정기선 시대를 연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다. <연합뉴스> |
◆ 위기마다 꺼내든 정주영 정신
권오갑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직접적인 인연은 많지 않지만 경영의 중요한 고비마다 '정주영 정신'을 꺼내 들었다.
2021년 8월, HD현대인프라코어(옛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마무리한 권 회장은 인천에 위치한 옛 본사 공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손동연 당시 사장에게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긴 액자를 전달했다.
HD현대중공업 창립 50주년을 맞아서도 권 회장은 정주영 창업주의 창의적 예지를 강조하며 변화와 도전을 촉구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정주영 명예회장의 창의적 예지를 본받아 변화에 대한 열망을 끌어올리자”며 “끝없이 정진하고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주영 정신'의 소환은 권 회장이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았던 2014년부터 본격화됐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14년 9월 16일, 사내 인트라넷에 글을 올려 “정주영 창업자는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에서 조선소 설계도 없이 배를 수주하며 현대중공업을 세웠다”며 “창업자의 정신을 되새기며 구성원 모두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같은 해 9월23일, 조선업 불황과 노조의 파업 움직임 등으로 위기에 놓였던 HD현대중공업의 정문 앞에서 권 회장은 새벽 출근길 직원들을 직접 맞이하며 호소문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도 그는 “정 명예회장께서 땀과 열정으로 일군 현대중공업을 잘 이끌 수 있을지 스스로 되물었다”며 파업 자제를 요청했다.
권 회장에게 ‘정주영 정신’은 위기 극복의 나침반이자 조직을 하나로 묶는 상징인 셈이다.
◆ '정기선 시대'에도 역할 있을까
권오갑 회장은 1978년 현대중공업 플랜트영업부 사원으로 입사한 뒤 47년간 HD현대와 함께하며 사원에서 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HD현대오일뱅크 부회장, HD현대중공업 부회장, HD현대 대표이사 부회장,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부회장 등 주요 요직을 거쳐 누구보다 HD현대그룹의 일선 현장을 잘 아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2023년 11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업계에서는 권 회장이 HD현대의 사내이사를 내려놓는 시점이 다가올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HD현대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해낸 전문경영인으로서 노하우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
정기선 회장' 시대가 열리더라도 병풍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몽준 이사장과
정기선 수석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오너일가가
권오갑 회장을 두텁게 신뢰하는 배경에는 그의 원칙과 뚝심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겸손함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