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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출석한 기업 총수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이번 청문회에 나서는 재벌 총수 명단은 한국 비즈니스 엘리트의 인명록과 같다.”
AFP는 6일 국회에서 열린 재벌총수 9인 청문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주요 외신들도 이날 청문회를 집중보도했다.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재벌그룹 총수가 증인석에 한줄로 나란히 앉은 진풍경이 펼쳐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블룸버그는 “부패척결 조사대상에 한국 재벌기업이 오르는 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 월스트리저널은 “한국의 재벌들이 역사적으로 대통령 특별사면 등 관대한 대접을 받아왔다”고 꼬집었다.
짧지만 이런 논평들 사이에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는 듯 보인다. 재벌과 부패권력의 정경유착 흑역사가 되풀이된 것은 과거에도 철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지적 말이다.
더욱 낯부끄러운 것은 28년 전 일해재단 청문회 당시와 너무도 흡사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해명과 면피로 시종일관한 과거와 ‘판박이’ 청문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총수들은 의원들의 쏟아지는 추궁에 하나같이 “모른다” “관계없다” “사실이 아니다” “기억이 안 난다”라고 불성실한 답변으로 발뺌하는 데 급급했다.
특검을 앞둔 상황에서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재벌총수들이 강제성과 대가성을 한결같이 부인할 것이란 점은 이미 예견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속이 시원해지긴커녕 실망 섞인 분노와 싸늘한 시선만 더욱 늘었다. 대체 청문회를 왜 하는 것인지, 평소 얼굴보기 어려운 재벌총수를 한 자리에 불러다놓고 면박주고 호통치는 것 외에 얻은 게 뭐냐는 등 자조와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재벌그룹 총수를 대상으로 국회 차원 1차 청문회는 박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 여부를 가름할 의혹들이 포함된 만큼 중요성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집중타깃이 됐던 만큼 더 큰 실망감을 안겼다. 삼성그룹은 박근혜 게이트 관련해 폭넓고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의심을 받고있다.
이 부회장은 의원들이 박 대통령 독대나 최순실씨 모녀의 승마활동 지원 과정, 삼성물산 합병 관련 의혹, 미래전략실 핵심 인물 등 어떤 질문을 받아도 앵무새처럼 “송구스럽다” “앞으로 잘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관련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미래전략실 해체나 전경련 탈퇴 같은 ‘환골탈태’ 약속은 내놓긴 했지만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네티즌들 가운데는 이 부회장이 너무도 동문서답식 답변을 이어가자 의원들의 말귀를 못 알아드는 사람처럼 ‘바보’ 코스프레를 한 것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관련 의혹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총수들은 또 하나같이 앞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국가경제 발전과 국민을 위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하지만 이런 대국민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믿는 이가 드문 것도 사실이다. 진정성과 개전의 정이 엿보이기 않았기 때문이다.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는 마지막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이런 말을 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사회가 바뀐 것인데 재벌에 계신 분들은 사실은 옛날에는 집행유예, 병원가고 말다가 요즘은 한두 명씩 감옥가기 시작했는데 이번도 결국은 누군가는 감옥을 가지 않고는 이런 일은 다시 반복 될 것입니다."
어쨌든 재벌총수 청문회는 끝이 났다. 진실규명은 이제 특검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