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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오후 네시'와 '스픽 노 이블', 교양과 배려의 딜레마

이현경 muninare@empas.com 2025-02-20 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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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오후 네시'와 '스픽 노 이블', 교양과 배려의 딜레마
▲ 지나친 배려는 자신과 상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사진은 영화 오후네시 스틸컷. <오후네시 공식 유튜브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타인을 대할 때 적절한 교양과 배려의 정도는 어디까지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적당한 교양과 배려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못 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하거나 무례한 상대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인내는 역치를 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맞닥뜨린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오후 네시>(송정우, 2024), <스픽 노 이블>(크리스티안 타프드럽, 2022)을 통해 교양과 배려의 또 다른 민낯을 생각해 본다. 

<오후 네시>는 벨기에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시>를 한국적 상황으로 번안한 영화다. 예기치 못 한 결말로 마무리 되는 대중적이지 않은 내용이라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 했지만 매우 독창적인 스릴러이다. 

퇴임 일에 마지막 수업을 마친 대학교수 정인(오달수)은 제자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아내 현숙(장영남)과 교문을 나선다. 교문을 나서자마자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지만 자신의 차를 받은 트럭 운전사의 초라한 행색에 연민을 느낀 정인은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그를 보내준다. 

정인과 현숙은 은퇴 후 거주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전원주택을 향해 부푼 마음으로 달려간다. 널찍한 정원 앞으로 고즈넉한 호수가 자리 잡은 그들의 전원주택은 평화롭고 따사로운 분위기로 가득 차있다. 

마을과 동떨어진 그곳에는 의사 부부가 사는 옆집이 유일한 이웃이다. 정인과 현숙은 인사차 옆집 문을 두드렸으나 외출했는지 아무 기척이 없자 간단한 메모를 문에 꽂아두고 돌아온다. 

다음 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 그들이 요즘 새롭게 시작한 명상을 할 준비를 한다. 

괘종시계가 네 시를 알리는 바로 그때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옆집 에 사는 의사 육남(김홍파)이다. 부부는 친절하게 육남을 맞이하며 차를 내오고 이런저런 인사말을 건네지만 육남은 굳은 얼굴로 “그렇소”, “아니오”라는 짧은 대답만을 들려줄 뿐이다. 

부부는 어색하고 불편해서 미칠 지경이지만 차마 손님에게 그만 돌아가라고 할 수 없어서 가까스로 견딘다. 마침내 두 시간이 흘러 6시가 되자 육남은 벌떡 일어나더니 인사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낯가림이 심하고 말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애써 이해하기로 한 부부는 방금 닥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육남은 어김없이 오후 네 시가 되면 그들의 현관문을 두드리고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부부는 외출도 해보고 못 들은 척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로 점철된 교양 있는 지식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정인은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말할 기회를 놓치고 마침내 억눌렀던 분노가 폭발해 육남을 폭행한다. 

다소 낯선 덴마크 영화 <스픽 노 이블>은 미국 호러 영화 제작사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블룸하우스에서 2024년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북유럽의 풍광과 정서가 농후한 원작을 추천하고 싶다. 호러 장르인 만큼 잔인한 장면과 끔찍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다. 

휴가를 떠난 덴마크 부부 비외른과 루이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네덜란드 부부 패트릭과 카린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와이너리 숙소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두 커플은 연배도 비슷하고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공통점도 있어 빠르게 친해진다. 패트릭과 카린은 비외른과 루이세에게 네덜란드로 한번 놀러오라고 제안한다. 

휴가에서 돌아온 비외른과 루이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의 패트릭 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유쾌한 네덜란드 커플과 만날 기대에 가득 찬 두 사람은 딸 아그네스를 데리고 출발한다. 

하지만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외른과 루이세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패트릭과 카린의 아들 아벨 방에 마련된 아그네스의 잠자리는 맨바닥에 침구만 덜렁 놓여있는 것이 시작이었다. 

루이세가 채식을 한다고 말했음에도 패트릭은 집요하게 고기를 권하고, 상의도 없이 아이들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겨 버린다. 또한 패트릭과 카린은 민망할 정도의 스킨십을 하기도 하고 비외른과 루이세가 자는 침실을 엿보기도 한다. 

비외른은 이들 부부의 비밀을 발견하고 몰래 집을 떠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로 다시 발이 묶이게 된다. 패트릭과 카린의 무도하고 무례한 언행은 점차 심해지고 폭력의 수위도 높아진다. 겨우 탈출에 성공하는 것 같았던 비외른과 루이세는 자동차 기름이 떨어져 또 한 번 위기에 처한다. 이 영화의 결말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보다 훨씬 잔인한 호러 영화가 많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어 소름 끼친다. 

<오후 네시>와 <스픽 노 이블>의 주인공들은 아무 죄가 없다. 누구를 해칠 의도도 없고 이웃이나 새로 사귄 친구들과 잘 지내려 한 것뿐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렇게 처참한 결말을 맞이해야 하는 걸까. 

둘 다 지나친 친절과 배려 때문에 비롯된 일이다. 즉, 교양 있는 중산층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이 비극을 막을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 것이다. <오후 네시>의 부부는 좀 더 일찍 단호하게 육남에게 경고했어야 하고, <스픽 노 이블>의 비외른과 루이세는 좀 더 빨리 냉정하게 패트릭의 집을 나왔어야 했다. 

교양으로 포장된 사회적 페르소나는 일정한 압력을 넘어서는 상황이 되면 벗겨져 버린다. 

지나친 배려는 자신과 상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우리 삶은 우리가 모르는 낯선 존재들을 가둬 놓은 얇은 바닥 위에서 영위되고 있다. 까딱하면 금 간 얼음처럼 바닥에 균열이 생겨 무섭고 낯선 그들이 우리 삶으로 침투한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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