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기후위기 탈탄소 경제포럼(기후경제포럼)이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마을에서 정부조직까지, 탄소중립 실행체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자들이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국회 토론회에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과감한 정부 조직개편과 예산편성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조직 개편 방안으로는 '기후에너지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에너지산업부' 등의 체제가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국회 기후위기 탈탄소 경제포럼(기후경제포럼)는 5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마을에서 정부조직까지, 탄소중립 실행체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기후경제포럼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소속 38명의 야당 의원들로 구성된 의원 모임이다.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과 국회의원들은 이날 토론회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증가를 막기 위해 인간 활동에 의한 배출량을 감소시키고, 흡수량을 증대해 순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중립' 달성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고자 했다. 토론회는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국내 기후단체인 플랜 1.5가 주관했다.
먼저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발제자로 나서 기후 대응 및 탄소중립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후에너지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에너지산업부' 등 세 가지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 소장은 "한국은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려면 7년 안에 2억4천만 톤을 줄여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어려운 수치"라며 "현재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체계와 조직으로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도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어렵기 때문에 감축 목표 설정 이후 지난 15년 간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부조직을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역할과 책임은 여러 부처에 나눠져 있지만, 이행현황을 점검하고 탄소중립 관련 제반 계획과 목표, 대책의 수립을 총괄하는 동시에 지자체 감축과 적응 대책을 관리하는 환경부가 포괄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며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의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소관주의에 따른 정책 갈등을 형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2년 기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7억2430만 톤 가운데 '에너지'가 76.20%(5억5190만 톤), '산업공정'이 18.13%(1억3130만 톤)를 차지했다. 이 둘을 합치면 전체의 94.33%에 이른다. 환경부가 총괄·조정할 수 있는 역량과 권한이 부재하다시피 한데,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실질적인 권한과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이 소장은 주장했다.
즉 현재 윤석열 정부 조직구조에서는 '에너지'와 '산업공정' 등이 산업부 주관 업무이기 때문에, 이러한 '칸막이 행정시스템' 안에서는 환경부가 총괄·조정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 조직구조를 버리고 과감한 정부조직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이 소장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정책과 환경부의 기후탄소 업무를 통합한 '기후에너지부' △산업부의 에너지정책 업무와 환경부의 기후탄소, 환경 업무를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부의 산업정책통상교섭, 에너지정책 업무와 환경부의 기후탄소 업무를 통합한 '기후에너지산업부'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참고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4월 22대 총선 공약으로 '기후에너지부'를 제시한 바 있다.
이날 정부조직 개편 제안이 주목을 끈 것은 최근 헌법재판소가 기후위기과 관련해 중대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8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법(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어린이와 청소년, 시민단체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으로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28일까지 2031~2049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내용을 반영해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일단락된다면 국회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이날 토론회 등을 통해 관련 논의에 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기후재정'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금의 기획재정부 중심 예산 편성을 넘어 기후예산 편성과 심의 권한을 실질화하고 기재부 내에도 각각 기후·산업·에너지 전담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행정 개편과 운영 방안을 제안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재부가 예산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지닌 구조보다 거버넌스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버넌스는 사회 내 다양한 기관이 자율성을 지니면서 함께 국정운영에 참여 및 협력하는 변화 통치 방식을 말한다.
그는 이어 "기존 기재부 중심의 하향식(탑다운) 예산편성 방식에서 상향식(바텀업)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프로그램 예산제도를 통해 프로그램 규모(총액설정)은 국민적 합의로 하고, 세부사업 편성은 실무 부처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결정하는 형식을 예시로 소개했다.
이와 함께 기후위기 거버넌스의 핵심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중위)로 삼고, 현재 기재부가 관할하는 기후대응기금을 탄중위가 관리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탄중위의 역할은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른 연도별 중장기 재정 투자 계획 설정과 예산의 편성·집행·결산·환류가 이루어지는지를 총괄 관리 감독하는 것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마을닷살림협동조합 이사장은 '마을 조직' 구성 문제를 짚었다.
김소영 마을닷살림협동조합 이사장은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서 탄소중립을 위해 마을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지원할지에 대한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전력을 중개하는 서울시 동작구의 가상발전소 사업과 정해진 시간 내 자율적으로 전기를 절감하면 절감량에 따라 보상금이 적립되는 동작구의 시민발전소 사업 등을 예시로 들었다.
발제가 끝난 뒤 전문가 패널들이 토론에 나섰다. 토론은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이 좌장을 맡았다.
▲ 국회 기후경제포럼이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탄소중립 실행체계'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소영 마을닷살림협동조합 이사장. <비즈니스포스트>
먼저 이경희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현행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서 탄중위의 역할 내지 기능에 관한 규정이 보다 구체적인 사항을 정해야 한다"며 "예컨대 탄중위 조직의 인적 구성이나 예산에 관한 규정을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경두 인천연구원 명예연구위원도 탄중위 기능 강화를 강조했다. 조경두 명예연구위원은 "탄중위가 '해야할 일'과 '하는 일'·'할 수 있는 일'의 격차가 커지면 안된다"고 말했다.
거버넌스와 탄소중립 업무를 총괄적으로 기획·조정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수연 플랜 1.5 정책활동가는 "현재 기후대응 주무 부처는 환경부로 돼 있지만, 실제 감축은 산업부의 몫"이라며 "즉 기후대응과 기획 및 구체적인 사업을 집행하는 부처가 다르다"고 짚었다.
신근정 지역에너지전환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도 "정치인이 특정연령, 특정성별, 특정계층에 편중돼 정치로 인한 정책 단절과 정치 양극화가 발생한 이럴 때일수록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며 "탄소중립기본법에 명시된 집행체계가 각 조문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구성돼야 탄소중립 정책실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