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5-01-30 11: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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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조금 및 대출금 지출 일시 중단 조치'가 법원 개입으로 제동이 걸린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한국 업체들이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임기 막바지에 보조금 계약을 마친 상태지만, 트럼프 행정부 측이 그 내용을 검토하기 전에는 보조금 지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산업·무역 정책을 총괄할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는 29일(현지시각)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기로 미국 정부와 확정한 계약을 이행(honor)하겠냐는 질문에 "말할 수 없다. 내가 읽지 않은 무엇을 이행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반도체법을 놓고 "반도체 제조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우리의 능력에 관한 훌륭한 착수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우리가 그것들을 검토해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배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 대행은 28일(현지시각) 각 정부 기관에 메모를 보내 '반도체(CHIPS) 인센티브 프로그램', '청정 차량을 위한 세액 공제', '첨단 제조·생산 세액 공제' 등이 포함된 연방 차원의 보조금과 대출금 지출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에 맞지 않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사업 등을 걸러낸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워싱턴DC 연방법원은 28일 보류 명령을 내리며 제동을 걸었고, 같은날 백악관은 연방 차원의 보조금·대출금 집행 잠정 중단 지시 문서를 철회했다.
다만 백악관은 'DEI(다양성·공평성·포용성) 이니셔티브'와 기후 변화 등과 관련한 연방 차원의 지출을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업계 안팎에선 연방 자금 집행 중단 조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큰 만큼 이 조치가 현실화하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보조금이나 저리 대출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 부정적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IRA 등에 따라 한국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들이 받게 돼 있는 세액 공제 혜택과 대출금, 미국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추진하고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반도체법에 따라 받게 돼 있는 보조금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미 지급이 결정된 수천억~수조 원 규모의 보조금이 줄면 기존에 세워둔 공장 건설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현재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건설을 위해 370억 달러 이상의 최종 투자 규모를 결정하고, 지난해 12월20일 미국 상무부와 47억4500만 달러(약 6조9천억원)의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계약을 최종 체결했다.
이를 토대로 첨단 미세공정 개발, 테일러 공장 건설, 고객 유치 등에 속도를 내 2026년 테일러 공장 가동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파운드리 시장 2위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은 업계 1위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줄이고 후발 주자인 중국 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한 중요한 생산거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기로 한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9일 미국 상무부로부터 최대 4억5800만 달러(약 6639억원)의 직접 보조금 지급 결정을 받았다.
인디애나 공장에서는 오는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AI 메모리 제품 양산이 예정됐다.
TSMC는 모두 65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3개의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을 짓기로 하고, 66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공장은 4나노 칩 양산을 시작한 상태다.
업계에선 이미 기업들이 전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수령했거나 트럼프 정부에서도 문제없이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TSMC는 작년에 보조금 일부를 먼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령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보조금이 일시 집행 중단되는 때에도 한국의 대미 설비투자·고용 창출과 연계된 보조금 등은 해당 투자 지역을 지역구로 둔 여야 의원들의 입김으로 인해 복원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섞인 관측도 나온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