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25년 우리 경제가 대통령에 대한 내란수사와 탄핵 정국 속에서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에 육박하며 수입 원자재 값이 치솟아 우리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할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 경기는 정치 불안, 고환율에 더 꽁꽁 얼어붙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서민들은 삶의 터전을 유지하기조차 힘든 상황에 몰리고 있다. 특히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올해 관세 인상을 앞세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맞아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수출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중공업은 물론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로봇 등 첨단산업까지 가격 경쟁력을 넘어 기술력까지 등에 업은 중국 산업이 무차별 한국 주력 산업을 무너뜨리고 있어 그야말로 한국 제조업은 복합 위기에 몰렸다. 올해 이같은 차이나쇼크 현상이 더 뚜렷해져 우리 산업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여러 불안 요인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퍼펙트스톰’에 노출될 경우,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진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힘든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 상황을 짚어보고, 이같은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신년 기획시리즈를 게재한다.
- 글 싣는 순서
① 탄핵정국 대외신인도 '시계제로', 반도체 비롯 산업 정책과제부터 풀어야
② '2차 차이나쇼크'에 제조업 붕괴 위기, 재계 신사업 전환 올해가 분수령
③ 금융권 사업 불확실성 일파만파, 해외·디지털플랫폼에서 돌파구 찾는다
④ 미국 중국 무역갈등 '공급망 전쟁' 돌입, 한국 반도체와 배터리 역할 커진다
⑤ 짙어지는 경기불황, 유통업계 ‘신선·복합몰·해외’ 무기 삼아 살 길 찾는다
⑥ 건설업계 올해도 험난할 업황, 내수침체와 부동산 침체 넘을 돌파구 '각양각색'
|
|
▲ 1990년 후반 경공업 중심의 중국 제조업 대약진을 의미하는 '1차 차이나쇼크'에 이어 최근엔 철강,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중공업은 물론 반도체, 배터리, 스마트폰 등 첨단산업에서 중국이 가격경쟁력과 함께 기술력까지 갖춰 세계 시장을 휩쓰는 이른바 ‘제2의 차이나 쇼크’에 한국 제조업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삼성, SK, LG, 포스코, 롯데그룹 등 재계 주요 기업들이 중국 제조업의 급성장에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석유·화학과 철강, 선박, 자동차에 이어 가전, 스마트폰, 배터리, 디스플레이까지 중국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확대되면서, 한국 제조업이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서도 중국과 한국의 격차가 2~3년으로 좁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한국 제조업이 붕괴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올해 차세대 신사업으로의 전환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기존 사업에서 ‘초격차’ 유지를 위해 첨단기술 개발에 힘쓰는 한편 2차전지 소재, AI, 반도체, 로봇, 냉난방공조시스템(HVAC) 등 새로운 분야에서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
2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저렴한 중국산 공산품들이 대거 쏟아졌던 ‘1차 차이나쇼크’의 영향을 훨씬 뛰어넘을 ‘2차 차이나쇼크’에 많은 국내 기업이 생존 위기에 놓여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차 차이나쇼크 당시 중국의 수출품은 주로 저부가가치 부문에 집중됐다는 특징이 있었다. 하지만 2차 차이나쇼크는 철강,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와 배터리 등 국내 대기업들이 오랜 성장을 이끌어온 ‘중후장대’ 제조업와 첨단 산업까지 직접 타격을 주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경제는 중국 경제 성장률 둔화가 아닌 경쟁관계 강화란 또다른 ‘제2의 차이나쇼크’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한중 교역 구조가 보완적 관계를 벗어나 경쟁관계로 진입하면 할수록, 국내 산업이 받게 될 또 다른 충격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 SK, LG그룹의 배터리 사업 분야에서 이미 중국 기업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1~8월 CATL, BYD 등 중국 배터리 제조사의 생산량 점유율은 62.7%에 이른다. 한국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합산 점유율 21.1%보다 3배가량 높은 것이다.
조선산업에서도 중국 침투는 거세지고 있다.
영국 해운 시장조사업체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누적 기준 국가별 조선 수주 점유율은 중국이 67%, 한국이 20%, 일본이 4%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보면 LNG 운반선을 제외한 벌크선, 컨테이너선, 자동차 운반선 등에서는 중국 점유율이 모두 80%를 넘어섰다.
철강 산업에서 중국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2023년 중국 기업의 철강 생산량은 10억1900만 톤으로 한국의 6670만 톤의 15배에 이른다. 중국 바오우그룹의 철강 생산량은 1억3077만 톤으로 포스코(3844만 톤)의 3.4배였다.
▲ 중국 산둥성 치루의 석유화학 공장 모습.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 |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저가 공세와 공급 과잉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등은 최근 기존 투자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
특히 그룹의 대표 캐시카우였던 롯데케미칼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며, 롯데그룹 전체에 위기를 몰고 왔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사업 체질을 빠르게 전환하지 못하면 중국과 경쟁에서 아예 도태될 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다.
LG그룹은 화학산업의 중심 축을 배터리 소재, 친환경 소재, 글로벌 신약 등 3대 포트폴리오로 옮기겠다고 선언하고, 기존 석유화학 사업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그룹도 2026년까지 2차전지 소재 사업에서 매출 1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2차전지 소재를 철강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앞서 제시했다. 2023년 기준 포스코의 2차전지 소재 관련 매출은 3조4천억 원 수준이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전자산업 기업들도 중국과 겹치는 사업 비중을 줄이고, 첨단 기술력이 중요한 분야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휴머노이드 로봇, 확장현실(XR), 냉난방공조시스템(HVAC) 등에서 새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다.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로봇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반도체 사업에서도 DDR4 등 중국 업체와 직접적 경쟁관계에 놓은 저가 구형 D램 제품 생산량을 줄이고 DDR5,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제품 비중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LG전자는 로봇을 비롯해 냉난방공조시스템, 전장(자동차 전자장치) 등 기업간거래(B2B) 사업 비중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예측이 용이한 B2B로 사업모델을 바꿈으로써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모두 중국에 밀린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에서 손을 떼고, 올레드(OLED)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처럼 제조업 의존도가 높고 첨단산업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2차 차이나쇼크’에 크게 노출되는 만큼, 기술혁신 가속화와 사업구조 개편을 서두르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완전히 뒤처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의 중국 연구기관인 메릭스는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라는 보고서에서 “중국 제조 2025 전략이 성공하면 첨단기술 산업 비중이 큰 국가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이에 따른 피해 국가 1순위는 한국이며 독일, 일본, 체코, 이탈리아 등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