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 속에서 차기 대권 주자들이 개헌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왼쪽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 속에서 개헌논의 불씨가 정치권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개헌을 바라보는 차기 대선주자들의 셈법은 각자 달라 개헌의 성사 가능성을 두고는 회의적 전망이 나온다.
1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친명(친
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개헌 추진 목소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나타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최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도 비상계엄 전에는
윤석열 정부의 정국 해법으로 임기단축 개헌을 요구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만큼) 이제 와서 개헌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내란동조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심판에 넘겨진 상황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탄핵과 내란혐의가 주목받는 것을 물타기 하려는 속내가 강하다는 것이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서 여당에서 내놓은 개헌 논의를 두고 "시선 돌리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친명계 입장은 개헌 논의의 명분은 인정하나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것으로 읽힌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도 SBS 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탄핵에 협조하기 싫으니까 보이콧하는 차원에서 개헌논의를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모두 공감하지만 그것은 빨리 탄핵을 한 뒤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명계에서 현 시점에서 개헌에 대해 부정적 말이 나오는 배경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관계가 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리스크가 법원 관행상 6개월 이내에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개헌논의로 차기 대선 일정이 지연되면 이 대표에게 좋을 일이 없다.
개헌논의는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정치 국면에서 개헌논의보다는 탄핵과 조기대선에 집중하는 것이 이 대표에게 효과적 전략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도 이런 점을 고려해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개헌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탄핵에 집중해야 할 때다”고 선을 긋고 있다.
반면 여당에서는 대선주자급 인사들을 중심으로 개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문제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들고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승자독식의 의회폭거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허용하는 이른바 87년 헌법체제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며 개헌을 주장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MBN 뉴스에 출연해 "1987년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대통령 4넌 중임으로 개헌해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시정하되 폭정으로 가지 못하도록 감시 및 견제하는 장치를 헌법안에 많이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여당 대권주자들이 개헌에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간을 벌려는 셈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시장이나
유승민 전 의원같은 다른 차기대권 주자들은
이재명 대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만큼 반전을 이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헌 논의에 적극적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장래 대통령 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은 결과
이재명 대표가 37%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은 2%의 지지를 얻는데 그치며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 여론조사는 한국갤럽 자체조사로 2024년 12월17일부터 1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한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2024년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기준 지역·성·연령별 가중치(셀가중)가 부여됐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 정대철 대한민국 헌정회장을 비롯한 헌정회 소속 여야 원로들이 2024년 12월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 개헌 후 대선’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는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의 원인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고 바라보고 개헌에 힘을 보태고 있지만 추동력은 약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헌정회는 최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핵소추 시국의 시급성과 국정상황의 복잡성을 감안해 이번에는 탄핵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권력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춘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이처럼 유력 대선주자마다 정치적 셈법이 다른 데다 개헌의 구체적 방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개헌 추진 움직임이 현실적으로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KBS 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30여년간 헌법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쌓여온 개헌요구가 많은 만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시간이 지나치게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과거 18·19·20대 국회에서도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정치권의 의견 차이로 무산된 바 있다는 점도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더구나 정치적 양극화와 비상계엄으로 거대 양당의 상호 신뢰가 깨진 상황도 개헌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이선우 전북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최근 열린 개헌토론회에서 “한국에서 특정 정당이 개헌을 시도하면 방향이나 내용의 타당성과 관계없이 다른 정당의 의견을 받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커 개헌이 성사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