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골드스테인 하우스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행사에서 관계자 및 방문객이 아이오닉9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전기차 소비자에 제공했던 세액공제를 폐지할 것이라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현대차그룹에 오히려 반사 이익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대차그룹은 세액공제 수혜 없이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 성과를 일궜는데 차기 정부에서 동등한 조건 아래 경쟁하면 테슬라와 ‘양강 구도’까지 형성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트럼프 정부의 전기차 관련 정책 밑그림이 담겨있는 ‘취임 뒤 100일 계획’ 인수위원회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 인수위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차량에 지원되던 최대 7500달러(약 1087만 원)의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지원 프로그램을 삭감하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트럼프 당선인과 후보 시절 인터뷰 자리에서 적극 주장하던 내용이기도 하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던 다른 미국 전기차 제조사가 테슬라와 경쟁에서 불리해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주장으로 해석된다.
테슬라는 올해 3분기 기준 전기차 한 대당 원가(COGS)를 역대 최저치인 3만5100달러(약 5088만 원)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시장 조사업체 켈리블루북(KBB)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여전히 49.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테슬라가 전기차 원가 경쟁력으로만 겨루면 미국 시장 장악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머스크의 주장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전기차 세액공제가 폐지되면 현대차와 기아도 다른 미국 완성차업체와 동등한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많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이 늦어 정부 지원의 수혜를 사실상 놓치고 있었으나 세액공제를 적용받지 못하는 불리한 상황에도 뛰어난 판매 성과를 보였다는 점이 이런 분석의 근거로 꼽힌다.
▲ 11월27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테슬라 전시장에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이버트럭 차량에서 눈을 돌린 채 주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미국에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30.3% 늘어난 9만1348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전기차 판매 증가율 8.7%의 3.5배에 육박하는 증가율이다.
미국 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도 1년 전보다 1.6%포인트 오른 9.5%로 테슬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국 잡지 디애틀랜틱은 현대차가 “새로운 테슬라로 거듭나고 있다”라며 “트럼프 2기 정부의 전기차 지원 정책 변화에도 충분한 방어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전기차 분야 기술에서 테슬라에 견줄만한 기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근거는 다양하다.
일단 현대차와 기아 전기차 라인업 및 기술 발전 속도가 테슬라를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지금보다 더 주목받는 브랜드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판매하는 아이오닉5와 EV9뿐 아니라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9와 소형 EV3 등을 순차적으로 미국에 출시할 예정이다.
양방향 충전(V2L)을 지원해 비상시 전기차로 가정이나 장비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기능도 현대차 기술력을 보여주는 장점으로 꼽힌다.
트럼프 당선인이 외국 업체의 전기차 현지 생산을 적극 장려하는 만큼 조지아주 공장(HMGMA) 가동 효과가 판매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는다.
전기차 소비자에 지원했던 연방 예산은 줄어들 수 있지만 현대차와 같이 미국 내 생산으로 고용 유발 효과를 가져오는 기업에 크게 불이익이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차가 테슬라와 함께 전기차 판매로 이익을 내는 단 둘 뿐인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세액공제 지원이 사라진다 해도 그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포드와 GM 및 스텔란티스 이른바 미국 ‘빅3’ 완성차 기업은 세액공제 지원 대상이면서도 전기차 판매로 손실을 내는 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정부 지원정책 재편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정상화로 테슬라와 현대차·기아 중심의 양강 경쟁 구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공정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미국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둔 점이나 구글 로보택시 웨이모와 자율주행 전기차 공급 계약을 맺은 요소도 테슬라와 경쟁할 동력으로 주목을 끈다.
디애틀랜틱은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해 전기차 구매 세액 공제를 폐지하더라도 현대차는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