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이 국내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2025년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전열을 재정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경제·정치 전반에 걸친 대내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내년 투자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용하며 현금성 자산을 늘리되, 핵심 사업 확장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내년 경영환경이지만, 경쟁력 확보와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출 수 없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19일 반도체(DS)부문을 끝으로, 17일부터 3일 동안 이어진 각 사업부문 별 글로벌 전략회의를 마무리했다.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는 매년 6월과 12월 국내외 임원급이 모여 현안을 공유하고 다음 반기 사업 목표와 영업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 글로벌 전략회의는 이례적으로 해외 총괄 9명을 모두 불러들이며 높아진 위기의식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관세 압박과 높은 원/달러 환율 등 변화한 수출 환경에 따른 영향을 두고 집중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대표이사 부회장은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 2025' 일정을 마치고, 멕시코를 방문해 북미 가전사업을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멕시코에서 가전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 리스크 관리를 위해 직접 상황 파악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도 20일
조주완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해 임원 300여 명이 모여 확대 경영 회의를 개최한다. 관세, 고환율 문제를 비롯해 인도법인 기업공개(IPO), 가전구독 사업의 해외 확장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12일 글로벌 권역본부장 회의를 열었다. 차기 현대차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호세 무뇨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을 비롯해 유럽, 인도 등 해외 권역 본부장들이 모여 미국 전기차 보조금 폐지 가능성, 중국 전기차 약진, 관세 등 통상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했다.
SK그룹은 올해 2월부터 격주로 ‘토요 사장단 회의’를 열고 있으며, 지난 4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비상계엄 후폭풍을 대비하기 위한 사장단·임원 대책 회의를 개최했다.
내년 기업환경이 매무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년 사업 전략 구상을 위한 재계 움직임이 분주해진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인들 대다수가 2025년은 올해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내년 투자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이익 가시성이 확보돼야 하는데, 현재 시점에서는 예측 가능한 요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전경. <삼성전자> |
이에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내년 투자를 보수적으로 잡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확대를 잠시 미루고,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HBM에서 SK하이닉스를 따라잡는 것이 파운드리에서 대만 TSMC와 격차를 좁히는 것보다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2025년 정기인사를 통해 메모리사업부를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 직할 체제로 전환했다.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가동 시점은 기존 2024년 말에서 2026년 이후로 미뤄졌다.
SK그룹은 인공지능(AI) 사업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텔레콤, SK스퀘어 등 주요 계열사들 곳곳에 AI 인재를 배치했고, SK텔레콤과 SKC&C를 중심으로 기업간거래(B2B) AI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SK그룹은 2028년까지 AI와 반도체 분야에 103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초부터 진행해 온 ‘리밸런싱’ 작업은 2025년에도 이어간다. SK그룹은 7월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2027년까지 30조 원의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고,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낮추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성장동력인 전기차에 2033년까지 92조7천억 원을, LG그룹은 향후 5년 동안 AI, 바이오, 클린테크 등 이른바 ABC 성장분야에 100조 원을 투자한다는 큰 그림 안에서 세부적인 투자 규모와 시기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수익성, 성장성이 부족한 사업은 정리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중국 광저우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매각하며 대형 LCD 사업에서 철수했으며, LG전자는 블루레이 플레이어 사업에서 손을 뗐다. 현대차는 올해 초 중국 충칭 공장을 3천억 원에 매각했다.
재계 관계자는 “고물가·고금리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에 따른 무역 갈등이 확산된다면 수출 위주의 국내 기업들이 입는 피해는 예상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며 “성장 사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비주력 유휴자산은 정리하는 흐름이 내년에는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