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으로 두 항공사의 마일리지 통합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항공사가 고객에게 부여한 마일리지 포인트는 부채다.
항공사는 마일리지를 보유한 고객에게 금전적 가치가 있는 혜택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진다. 고객은 적립된 마일리지를 이용해 보너스 항공권이나 좌석승급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또 항공사가 운영하는 쇼핑몰이나 항공사 제휴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마일리지로 결제할 수도 있다.
고객이 100만 원짜리 항공권을 구매했고 이 때 고객에게 제공되는 마일리지의 공정가치가 3만 원으로 평가된다고 해보자. 항공사에 유입되는 현금은 100만 원이겠지만 수익(매출)은 97만 원으로 처리된다.
마일리지 공정가치 3만 원은 부채로 인식됐다가 나중에 고객이 사용할 때 즉 항공사가 마일리지에 해당하는 용역이나 재화를 제공했을 때 매출로 전환된다. 마일리지는 이처럼 수인인식을 뒤로 미루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흔히 ‘이연수익’이라고 한다. 이연수익은 부채계정이다.
대한항공의 마일리지부채(이연수익)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총 2조5277억 원(별도재무제표 기준)에 달한다. 아시아나항공은 9758억 원이다.
이 수치가 미사용 마일리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고객이 마일리지를 100% 소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항공사는 여러가지 데이터와 통계적 기법으로 산출해 낸 마일리지 사용률 등의 지표를 활용해 마일리지 공정가치를 구한다. 재무제표에 부채로 반영하는 것은 이 값이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에 대한 해외 이해 당사국들의 승인이 사실상 완료되면서 두 항공사 고객들 사이 마일리지 통합 논쟁이 달아오를 조짐이다. 알려진 바로는 앞으로 약 2년 동안 대한항공은 아시아나를 자회사로 운영하다 합병한다.
이 때 아시아나의 고객의 마일리지가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전환될 것인데 통합비율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1대1 통합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두 항공사의 마일리지 가치가 다르다는 게 그 근거다.
지난 2020년 국정감사 때 진성준 의원이 낸 자료를 보자.
신용카드사 중에는 고객들의 결제금액에 대해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회사들이 있다. 이 마일리지는 항공사로부터 구매한 것인데 두 항공사의 판매가격이 다르다. 진 의원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대한항공은 대략 14.5원, 아시아나는 10.8원이었다.
카드사들이 고객 결제액에 대해 적립해주는 마일리지도 두 항공사간 차이가 있다. 예컨대 기업은행에서 제공하는 같은 이름의 카드 2개를 보면 결제액 1천 원 당 대한항공은 1마일리지, 아시아나는 1.5마일리지를 적립해준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내용들에 근거해 대한항공 대 아시아나 마일리지 통합비율은 대략 1대0.7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가치를 1로 볼 때 아시아나는 0.7에 해당하는 셈이다. 통합시 아시아나 1마일리지가 대한항공 0.7 마일리지로 전환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은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1대0.7설을 강력하게 부인한다. 그럼에도 아시아나 고객들은 관련보도에 대한 댓글이나 SNS 등을 통해 비균등 통합에 반발하며 1대1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고객이 인천공항에서 미국 존에프케네디 공항을 가려면 5만2500마일 정도를 소진해야 한다. 만약 1대0.7로 통합된다면 아시아나 7만5000마일과 대한항공 5만2500마일이 대등해진다. 아시아나 고객 입장에서는 2만 마일을 웃도는 손실을 입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소비자주권시민회의라는 시민단체는 성명을 발표해 1대1 통합을 요구했다. 항공사간 이해관계에 따른 합병 때문에 아시아나 고객이 경제적 손실을 보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일부 아시아나 고객들은 두 항공사간 합병으로 동맹항공사 이용면에서 불리해지는데 마일리지 통합 불이익까지 감수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항공동맹은 전세계 항공사들이 서로 뭉쳐서 노선운영이나 마일리지 등을 통합적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대한항공이 속한 항공동맹은 ‘스카이팀’이다. 아시아나는 ‘스타얼라이언스’에 소속돼 있다.
아시아나가 대한항공에 합병되면 스타얼라이언스에서는 탈퇴해야 한다. 스타얼라이언스 소속 해외 항공사들을 선호해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적립해 온 고객들은 동맹 탈퇴 불이익은 어쩔 수 없다해도 마일리지 불이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1대1 통합은 어려울 것이라 보면서도 구체적 통합비율에 대한 언급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고객들이 납득할 만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정도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대체로 1대1 통합이 많았다. 2008년 미국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항공이 합병할 때는 두 항공사 간 마일리지 적립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1대1 통합이 채택됐다. 2010년 미국 유나이티드항공과 컨티넨탈항공간 합병, 최근 알라스카항공과 하와이안항공간 합병에서도 1대1 통합이 단행됐다.
물론 통합비율을 달리한 사례도 있다. 2016년 알라스카항공과 버진아메리카간 합병의 경우 1대 1.3 비율이 적용됐다. 두 항공사는 마일리지 체계가 많이 달랐다. 알라스카 항공은 비행 거리에 따라, 버진아메리카는 구매금액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해줬다.
대한항공은 두 회사간 마일리지 통합방안을 내년 6월까지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간 인수논의가 시작된 2019년 무렵보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마일리지 정책은 허용할 수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제시할뿐 구체적 통합비율 등에 대해 지시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두 항공사가 해외사례 등을 검토하고 전문컨설팅업체의 조언을 받아 통합 비율을 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1대1 통합을 하면 아시아나 고객에게는 좋겠지만 상대적으로 대한항공 고객에게는 불이익이 될 수 있다. 마일리지 통합비율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대항항공이 어떻게 다룰 지 주목된다. 김수헌 MTN 기업&경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