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 기지개를 펴려던 항공·여행업계가 때 아닌 비상계엄 시국 속에서 당혹스러운 형편이 됐다. 사진은 4일 자정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모처럼 기지개를 펴려던 항공·여행업계가 때 아닌 비상계엄 시국 속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계엄이 해제되며 최악의 상황에 이르진 않았지만 후폭풍 여파를 아직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한국이 여행하기 위험한 나라라는 꼬리표를 달게 돼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쪽의 수요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4일 항공·여행업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 해제 이후 정국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계엄은 해제됐지만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를 향한 국민 여론이 악화하며 정국 불안의 불씨가 커졌다. 박근혜 정부 말기 촛불정국이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정국 불안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쳐 환율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부수적 악영향도 떠안게 됐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해외 여행을 할 때 국내 여행객들의 구매력이 줄어 여행 수요 위축 요인이 될 수 있다.
항공사들의 사례를 보면 외화 부채가 많아 원/달러 환율이 오를 때 영업이익과 자산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다.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3일 환율은 1402.9원으로 마감됐으나 계엄 선포 이후 급등해 오후 11시50분에는 1446.5원까지 치솟았다. 계엄이 해제된 뒤인 4일 오후 12시 기준 환율은 1415.1원으로 다소 안정됐지만 정치적 불안감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항공·여행업계는 코로나19로 오랜 침체를 겪다 이제 막 회복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여행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이르렀고 각종 업황 호재들도 잇따르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과 관련해 세계 각국 경쟁당국의 심사절차를 모두 매듭짓고 세계 10위권 초대형항공사(메가 캐리어)로 비상할 채비를 본격화하던 찰나였다.
중국정부가 한국 여권 소지자에게 최장 30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게 하는 등 한국과 중국이 관계가 개선되며 관련 수요들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었다.
K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외국인 방문객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한국을 방문한 외래 관광객 수는 1589만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8% 늘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태에 탓에 업황 불확실성이 갑작스레 커진 셈이다.
▲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여행업계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인바운드 수요 감소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여행 위험지역으로 여기며 발걸음을 돌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국가들은 외교부처를 통해 한국에 대한 여행 자제나 주의를 권고하고 있다. 각국의 한국 주재 대사관에서는 한국 체류 자국민들에게 안전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각국 정상급 인사들의 한국 방문도 전면 수정되고 있다.
당초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5~7일 한국 방문 일정을 소화하기로 돼 있었으나 이번 사태를 이유로 방한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달 중순 예정돼 있던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총리의 방한도 취소됐다.
게다가 간밤에 벌어진 급작스런 비상 사태를 해외 언론들이 긴박하게 보도하며 헬기와 무장군인들이 동원된 장면들이 세계 곳곳으로 전파를 타게 됐다.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여행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아지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항공사는 원래 24시간 운영체제를 가동하고 있어 비상상황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영업과 관련해서는 인바운드 쪽 영향을 특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다른 관계자는 “인바운드 쪽 영향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뚜렷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예약 취소가 접수되거나 하는 사례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업계는 영업 특성에 따라 이번 사태에 따른 온도차가 조금씩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 대형 여행사들이 대체로 아웃바운드(내국인의 외국여행) 위주의 영업을 하다 보니 당장에 악영향이 미치진 않고 있다.
다만 정국 불안이 여행심리를 위축시킬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형여행사 한 관계자는 “내부 고객서비스팀에 확인해보니 고객 문의나 여행 취소와 관련해 접수된 내용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바운드 위주의 영업을 하는 군소 여행사들과 외국인 여행객을 응대하는 지역 상권에서는 당혹감이 역력하다. 인바운드 수요 감소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바운드 여행사업을 하는 김정윤 헬로월드코리아 대표는 “당장 내년부터 경상북도 지역 단체들과 협력하며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사업을 추진하려 했는데 이번 사태가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