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해운업계가 시황 하락 국면을 대비하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귀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해운사들로서는 불확실성이 더 커진 것이지만 컨테이너와 벌크 등 세부 업종별로는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조금씩 다르다.
▲ 해운업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사진)의 귀환으로 더 큰 불확실성을 맞았지만 주력 업종별로는 유·불리가 조금씩 갈릴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국내 대표 해운사인 HMM과 팬오션은 ‘트럼프 리스크’를 반영해 경영전략을 수립하며 사업 다각화 준비를 서두를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17일 해운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컨테이너 분야는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입성으로 가장 큰 불확실성을 안게 되는 해운업종으로 꼽힌다.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뼈대로 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통상정책 기조를 감안하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뒤 해상 물동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중국산 제품에는 60%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런 관세 부과 공약이 현실화하면 글로벌 물류가 위축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미국 국민의 해외 직구 면세 한도를 현행 1인당 800달러에서 축소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아예 폐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자상거래에서 비롯되는 물동량도 급감할 수 있는 셈이다.
중국을 향한 강경책이 더욱 강화함에 따라 중국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향후 해상물동량이 줄어들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당선인이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마크 루비오 상원의원은 미국 정치권에서 중국에 적대감이 많은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는 중국산 원자재나 부품,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드는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의 미국 수출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이 역시 컨테이너 물동량이 줄어들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으로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귀환으로 더욱 어려운 경영환경을 맞게됐다고 볼 수 있다.
벌크(건화물, 유조선)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팬오션도 안심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팬오션의 건화물사업은 중국 경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해 중국 경기 회복에 악영향을 미치면 팬오션의 영업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
중국은 세계 건화물 수요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구교훈 한국물류사협회 회장은 ”중국의 대미 수출이 막히고 부동산 버블로 내수가 침체되면 중국 경제성장률이 5% 미만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중국발 건화물 시황 악화가 올 수 있다“며 ”대표적 건화물인 유연탄은 시멘트, 철강, 발전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연료인데 경기침체로 유연탄 수입이 감소하면 건화물선 시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벌크 분야 가운데서도 유조선(탱커선)과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의 수송 수요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전통 에너지산업에 친화적 태도를 보이는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화석연료 채굴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조선 매체 스플래시247은 부락 세티녹 리서치 책임자를 인용해 트럼프 당서인의 정책기조가 “석유와 가스 수출에 좋은 징조이며 유조선 분야가 잠재적으로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 김경배 HMM 대표이사 사장(왼쪽)이 9월30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에쓰오일 본사에서 에쓰오일과 원유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한 이후 박봉수 에쓰오일 운영총괄 사장(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HMM>
HMM과 팬오션 등 국내 해운사들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부터 사업 구조를 안정화하고 시황 하락에 대비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왔는데 미국의 행정부 교체 변수도 경영전략에 반영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조선과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등은 HMM과 팬오션이 최근 사업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HMM은 최근 중형 석유제품운반선 4척의 신규 선박 건조를 발주하며 유조선 사업을 강화할 기반을 강화했다. HMM이 중형 석유제품운반선을 신조 발주한 것은 과거 현대상선 시절 이후 약 20년 만이다.
HMM은 장기운송계약을 통한 안정적 이익 확보에도 서두르고 있다. HMM은 10월 에쓰오일과 원유 장기운송계약을 맺고 2025년부터 5년 동안 중동에서 한국으로 에쓰오일 원유를 운송하기로 했다.
팬오션은 이전부터 유조선과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분야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향후 선대 도입 계획에도 유조선과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비중이 높은 편이다.
▲ 7월25일 팬오션이 발주한 뉴브레이브호와 뉴네이처호의 명명식을 진행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정 가운데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대모를 맡은 소피아 림씨다. 안중호 팬오션 대표이사(대모 오른쪽)와 이상균 HD현대중공업 사장 내외(대모 왼쪽)도 참석했다. 두 선박들은 쉘과 장기계약 수행을 위한 배다. <팬오션>
팬오션은 올해 8~10월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신조선) 3척을 인도한 데 이어 12월에 2척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내년 3월과 5월, 11월에도 각각 1척씩 신조 발주 물량을 받는다.
팬오션의 3분기 실적을 보면 유조선 분야 매출은 816억 원으로 건화물(7890억 원)보다 낮은 편이지만 영업이익은 289억 원으로 수익성이 좋은 편이다. 건화물 영업이익은 730억 원이다.
액화천연가스 분야도 매출 246억 원, 영업이익은 84억 원으로 높은 수익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해운 분야는 선대 확대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신조 발주나 중고선 도입을 막론하고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만큼 선사들도 신중한 태도로 대비책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임기 4년이 지난 뒤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해운산업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주기가 매우 긴 편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트럼프 2.0 시대와 해운산업에 대한 영향’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2기 정책 강화와 중국의 대응으로 해운산업에 복합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선사들은 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환율 변동, 수출 전략 변화, 공급망 다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