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진행한 지지자 연설에서 아내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를 보며 웃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환경 및 기후정책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 임기 당시 트럼프 당선인이 보인 행보를 고려하면 유엔(UN)이 주관하는 기후총회를 비롯해 글로벌 기후대응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6일(현지시각)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라 미국 국내외 기후 대응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기후변화는 사기”라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포함한 기후대응과 관련된 미국 에너지 정책들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IRA를 비롯한 주요 에너지 정책들이 폐기까지는 가지 않아도 축소되는 수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법무 컨설팅업체 ‘맥더못윌앤드 컴퍼니’의 칼 플레밍 파트너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공화당 주들에 (IRA가 주는) 일자리와 경제적 혜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전면 해체까지 가긴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IRA가 제공하는 세액공제와 대출 등의 발목을 잡으면서 정책 집행을 느리게는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는 이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IRA 세액공제 지급을 진행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지난 6월 국제 기후연구단체 카본브리프는 트럼프 당선인이 내놓은 정책을 바탕으로 향후 그가 이끄는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 경로를 분석했다.
그 결과 트럼프 정부가 이끄는 미국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을 때보다 2030년까지 40억 톤이나 더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환산하면 미국 정부는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를 28%밖에 감축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미국 정부는 파리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자국 온실가스 배출량을 52% 감축하기로 했는데 해당 목표의 절반 정도밖에 지키지 못하게 된다.
외신들과 전문가들은 미국 국내 정책만큼 글로벌 기후대응도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봤다.
당장 현지시각 오는 11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부터 기후대응에 필요한 재원 논의가 공전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첫 임기 시절 미국을 파리협정에서 탈퇴시킨 바 있다. 파리협정은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기온상승을 1.5도 아래로 억제하기로 약속한 내용을 담은 국제 조약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임기 동안에도 파리협정 탈퇴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거리에 세워져 있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홍보 구조물. <연합뉴스> |
알렉스 스콧 국제 싱크탱크 ECCO 기후외교 선임고문은 “이번에는 트럼프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자체에서 탈퇴하겠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며 “이는 법적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으며 해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COP29에서 논의되는 핵심 의제인 기후금융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당선인이 ‘신의없는 행동’을 보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기후금융은 자체 기후대응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이나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는 재원을 말한다.
미국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국제 기후금융 ‘손실과 피해기금’에 1억7500만 달러(약2445억 원)를 내놓기로 한 바 있다. 당시 기여금을 내놓기로 한 주요국 가운데 가장 적은 금액이라 많은 비판을 받았다.
스콧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기후금융 약속을 저버릴 가능성이 높으며 이미 약속한 자금조차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래도 금융 관련 협정은 미국에만 달린 문제는 아니라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베티 왕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 연구소 기후 선임 프로그램 책임자는 “파리협정을 탈퇴하고 해외 기후자금 지원을 촉소하는 등 미국 리더십 부재로 인해 다른 국가들은 자체적 기후약속을 강화하고 유럽연합 등 다른 지역에 협력 프레임워크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이는 곧 기후목표 달성을 위한 글로벌 협력이 둔화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내에서도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기후정책을 향한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마이클 만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수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미국은 실패한 민주주의”라며 “우리나라는 이제 지구의 미래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 교수는 1980년대에 세계 최초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화해 직접적 상관관계를 규명한 기후학자다.
지나 맥카시 전 백악관 기후고문은 가디언을 통해 “트럼프가 뭐라고 하든 친환경 전환은 막을 수 없고 우리나라도 돌아갈 수 없다”며 “우리는 절대 트럼프가 우리 후손들의 생존과 건강을 위협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대응에 큰 힘을 쏟고 있는 유럽연합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우려를 표명했다.
토마스 바이츠 유럽 녹색당 공동대표는 가디언을 통해 “오늘은 미국과 세계인 모두에 가장 어두운 날”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COP29를 주관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은 미국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기후총회는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기후총회 개최를 위한 준비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들에게 필요한 일”이라며 “모든 나라들이 함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적응력 높은 공급망을 구축하지 않는 한 기후변화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참여국들도 미국 입장과 관계없이 기후대응 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이먼 라이언 아일랜드 기후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트럼프 승리는 우리가 이번 회의에서 기후금융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의 승리는 우리가 바쿠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꾼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어렵게 만들었을 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행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