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로 연 5천만 원 이상 소득을 얻은 투자자에게 20%(3억원 이상은 25%)의 세율을 적용하는 세금이다. 국회 다수당으로 입법 사항에 결정권을 가진 민주당은 금투세 시행 관련 당론을 두고 정책토론회까지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결국 이 대표에게 결정을 일임한 바 있다.
여야 합의로 2025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금투세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 대표도 동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대표가 금투세에 대한 결정을 놓고 장고하는 사이 민주당 내부에서는 ‘보완 후 시행’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민주당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정태호 의원은 10월30일 금투세 공제금액을 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2배 상향하고 이월 공제 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2배 연장하는 금투세 보완입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표가 장고 끝에 이날 전격적으로 ‘유예’가 아닌 ‘폐지’를 결정한 배경에는 개미 투자자들이 금투세를 ‘재명세’라고 부르며 강하게 반발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 스스로도 이날 금투세 폐지 결단을 밝히면서 “원칙과 가치를 따지면 당연히 금투세를 개선 후에 시행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주식 투자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금투세 폐지 결정이 알려지자 진보당은 물론 조국혁신당까지 비판적 견해를 나타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정부 여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장에 동의한 민주당의 결정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여야가 어렵게 합의해 마련한 법안을 합리성 없는 정치적 압박에 밀려 폐기하는 전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당도 같은 날 논평에서 이 대표를 향해 “금투세의 과세 대상은 금융투자소득이 5천만 원 이상인 만큼 상위 1%다”라며 “(금투세 폐지 결정은) 자산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또 한 번의 부자감세를 시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민주당의 금투세 정책토론회 당시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피켓팅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대표가 주요 지지층인 진보진영의 비판이라는 부담을 안고 금투세 폐지를 결정한 것은 보수층이나 무당층을 향해 차기 대권주자로서 여론을 수용하는 ‘안정적 리더’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시각이 나온다.
실제 금투세 관련 여론조사에서 금투세에 반대하는 응답자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층 또는 무당층이 더 많았다.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 1일 KOSPI 지수 현황이 표시돼있는 모습. <연합뉴스>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언즈가 10월30일 발표한 경제이슈 정기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투세를 유예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72.7%였다. 이 가운데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경제수준 상위수준'(44.0%)과 '보수층'(45.8%)에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 대표에 연임한 뒤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앞세워 중도·보수층으로의 외연 확장 행보를 이어 온 이 대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금투세 문제 결정에서 다시 한 번 ‘우클릭’을 보여준 셈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일 이 대표와 민주당 4선 의원들의 만남이 끝난 뒤 브리핑에서 금투세와 관련해 “(한 참석자는) 우리가 절제된 대응을 잘해서 주식시장에 안정감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금투세 시행을 예정대로 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폐지까지 나갈 줄은 몰랐다”며 “유력 대선주자로서 명분보다는 결국 1천만 명이 넘는 주식투자자들을 등질 수 없었지 않았겠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도 금투세 폐지 결정에 따른 진보진영 지지자들의 실망감을 달래려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 대표는 금투세 시행 당론을 번복한 것에 관해 “원칙과 가치를 져버렸다는 개혁·진보 진영의 비난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더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시가 정상을 회복하고 기업의 자금조달, 국민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상법 개정을 포함한 입법과 증시 선진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오피니언즈가 지난 10월 25일부터 28일까지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웹 조사로 실시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0%포인트다. 김대철 기자